[이규성의 전원에 산다] 뜻밖의 외출
최근 친구와 문예지 신인상 시상식에 다녀오며 '인생 2막'에 많은 생각을 가졌다. 시나 소설 등과 멀어진 채 살다보니 책 한권 제대로 읽지 못한 시간도 많았다. 지적 함양에 게으른 건 당연지사. 동문 선후배 중에는 문학상을 받는 일이 종종 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시와 수필로 동시에 신인상을 받게 된 이는 친구누나다. '와, 대단하다'. 우선 70세 가까운 나이에 붓을 든다는 것 자체로 감동이었다. 문학소녀적 꿈을 다시 발현된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고. 얼마전 누나는 정든 학교에서 정년퇴직했다. 이제 여행과 글쓰기로 인생2막을 펼치고 있다. 가장 궁금했던 것은 2막을 꾸리는 이의 모습, 내게도 곧 닥칠 겠지만 그리 호락호락해 보이질 않아서다. 매년 금융사, 언론사는 물론 각종 기업과 사회단체 등에서 인생 2막 혹은 노후 대비 등에 관련한 강연, 논문을 쏟아내지만 피부와 와 닿는 게 거의 없다. 어느 곳에서는 준비, 설계를 부르짖거나 새로운 구직 방법 등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어떤 보험사에서는 목돈의 노후자금을 갖추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거의 협박 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하여간 친구누나 축하도 할겸 주말 출근길이 아닌 서울나들이에 나섰다. 시상식에 참석하기 전 친구와 광장시장에 들러 빈대떡, 잔치국수를 먹고 아이스커피도 마셨다. 이어 탑골공원 담벼락 평상에서 장기 두는 노인들 틈에서 훈수도 뒀다. 누가 훈수를 두거나 말거나. 모두가 한데 어울려 여러 무더기의 장기판에 한숨과 폭소가 터지곤 했다. 송해거리를 지날 즈음 친구는 "곧 우리도 여기 오는거냐"고 독백을 했다. 여기 잣나무골에서는 노인들이 늘상 회관 노인정에 모여 일과를 보낸다. 곧 닥칠 일과 관계 등 모든 일상을 재편해야 할 일이 문득 걱정이다. 시상식은 화기애애하면서도 소박했다. 여러 편의 시낭송과 수상자들의 소감, 동호회의 합창 등이 이어졌다. 무엇보다 시와 노래, 흔치 않은 소통법이랄까. 친구누나가 "앞으로 시창작에 몰두할거야"라는 말은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그 나이에 몰두하겠다니 !'. 모두 손을 놓을 즈음에도 무엇인가 꿈을 가졌다는 것이. 그렇게 준비하는건가? 인생2막! 생각할수록 참담했다. 무엇인가로부터 하염없이 멀어져가는 듯, 그런 시간으로 여겼는데.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문학상은 300~400여 개가 있다. 시, 소설, 아동문학, 시조, 평론 등 전 장르를 망라해 거의 '하루에 하나꼴'이다. 운영기관도 출판사, 언론사, 문인단체, 문인단체 지회, 지자체, 정부 부처, 공공기관, 추모사업회, 기업체, 동문회, 기념사업회, 문화재단, 종교단체, 문화연구소, 사단법인 등 수두록하다. 정부 부처가 운영하는 상도 있다. 이를 통해 수많은 문인들이 태어난다. 이런 문학생산자들로 그렇게 만들어진 저변이 문학을 살게 하고 한류를 만들어왔다고 여겨진다. 물론 문학을 선양할 만한 권위가 아니어도 자본이나 권력에 물들지 않은 채 하늘의 별만큼 많은 이들이 순수하게 노래하고 있다니. 느즈막 생산자라는 지위를, 그 장엄하고도 순수한 꿈이 드디어 '2막'일 수 있겠다는 깨달음이 밀려들었다. 주말 잣나무골을 떠난 하룻동안의 유람, 혹은 여정은 특별할 게 없다. 그저그런 일상의 한편이 잔잔하게 울렸다는 고백일 따름이다. 인생 2막을 묻게끔 하는, 시향에 파묻혔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