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성의 전원에 산다] 즐거워서 아픈 여행길
10월 마지막 주말, 고속도로엔 나들이객으로 북적였다. 심지어는 휴게소 화장실마저 긴 줄이 늘어설 정도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대개 관광버스로 움직이는 단체여행객들,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 많았다. 모두들 단풍철 막바지 야유회를 떠나느라 활기 넘쳤다. 좀전 나는 마을회관에서 주민들과 막 관광버스에 오른 터였다. 우리처럼 이리 많은 사람들이 마을단위의 여행을 하는건가. 그도 그럴 것이 관광버스 전면 유리창에는 마을지명이 붙어 있어 오늘 만큼은 국가적인 행사같다는 생각도 들 지경이다. 우리 마을에서는 네번의 행사가 있다. 봄·가을 야유회, 여름 삼계탕 먹는 날, 겨울에는 척사대회를 한다. 이번 가을 야유회에는 예전보다 참여가 적었다. 관광버스 두대에 가득찰 정도로 였는데 이번엔 한대를 다 채우지 못했다. 우리 애들이 유치원생일 무렵 이 여행에 참여한 게 아득하기만 하다. 그날 빠지지 않는게 있다. 배웅객이다. 특히 선거철일 경우 출마자들이 일찍 나와 인사도 하고 음료수 상자도 실어주곤 했다. 올핸 그들이 없어 다행이다. 다만 조합장, 읍장, 마을이장협의회장이 마을 야유회를 배웅했다. 인삿말도 그저 잘 다녀오라고 간단한 덕담에 그쳤다. 야유회 경비는 송전탑 및 상수원 보호권역 지원금에서 나온다. 야유회 경비를 허용한 이유가 경제 후방효과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 외의 지원금은 마을 기업 혹은 주민 제안사업 등에 쓴다. 버스에 오른 사람은 30여명, 코로나 이전보다 열명쯤은 줄어든 것 같다. 참여자들은 주로 80대 노인, 최고령은 95세 할머니 그리고 세살짜리 아이 한명은 부모를 따라 나와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일부는 처음 보는 이도 있다. 아마도 근래 이곳으로 주거를 옮긴 이들이겠으나 모두 노인이다. 마을 가구수가 50여호인 것에 비해서는 적은 편이다. 사실 마을에는 주소만 있는 전입자들이 열가구가 넘는다.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나 그들은 '유령'이나 마찬가지다. 버스에 올라서자 부녀회, 청년회원들은 모두에게 김밥, 음료, 과일 등을 나눠주고 인사를 건냈다. 부녀회장과 청년회장은 60대 초반, 노인회장은 80대 중반. 그들은 마을 일을 도맡아 한다. 도시 직장인이라면 은퇴할 나이지만 여기서는 그저 어린 청년일 뿐이다. 여행길은 서천 갈대밭, 금강하구, 새만금 방조제, 선유도로 이어졌다. 버스 안에서 노래를 부르고 관광춤을 췄다. 어떤 노래가 나올 때는 버스가 떠나가도록 합창을 하기도 했다. 합창곡은 마을회관에서 배운 노래들이다. 노인들은 노래나 장고 등을 배우고 여러 취미생활도 한다. 그런 일상 중 하루 함께 하는 하룻짜리 여행은 내게도 다시 못 올 날이다. 그래서 햇빛도 바람도 바다와 파도도 싱그럽고 투명했다. 마을 이장은 "며칠전 노인회장과 야유회를 상의할 때 야유회를 잘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노인회장께서 이번이 마지막 여행이라는 말을 듣고 그런 맘이 들었다"고 했다. 야유회 때마다 세상을 떠나 못 보는 이웃들이 생겨서 한 말이다. 빈자리를 나도 공감한다. 60대가 청년인 동네, 어린 아이 보기가 무척 귀한 세상에서는 그 말뜻을 다들 안다. 그래서 함께 흥을 나누려고 더 노래하고 춤 춘다. 우리들의 풍경, 아이를 낳지 않는 시절 노인으로 살기란 더 적적할 따름이다. 오늘 만큼은 그 적적함을 잊고자하는 이들과 함께 해서 즐겁고도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