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3>미국 소노마코스트 레인(RAEN)
장미꽃과 딸기 같은 붉은 과실, 홍차의 향까지 우아하다. 피노누아의 본고장인 부르고뉴 마저 알코올 도수가 13도는 기본으로 올라가는 요즘인데 미국 캘리포니아 피노누아가 12.5도 밖에 안된다. 신선하면서 섬세한 것이 부르고뉴보다 더 부르고뉴스럽다. 해안가에서 2~3마일 밖에 떨어지지 않아 '트루(True) 소노마 코스트'로 꼽히는 곳에서 키워낸 레인(RAEN)의 피노누아다.
와이너리 레인의 설립자이나 와인메이커인 카를로 몬다비는 지난 24일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좋은 와인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키워내는 것"이라며 "그렇다보니 먼저 프랑스의 그랑크뤼 포도밭과 같은 개념으로 피노누아가 탁월하게 자랄 수 있는 지역을 찾고, 다음은 제초제 등은 일체 쓰지 않는 등 그 땅과 자연을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성에서 다들 짐작했듯 카를로는 몬다비 패밀리의 4대손이다. 1세대인 체사레 몬다비, 2세대로 몬다비를 세계에 알린 로버트 몬다비, 3세대로 현재 컨티뉴엄을 이끌고 있는 아버지 팀 몬다비에 이어 형제인 카를로와 단테가 2013년 레인을 설립했다.
레인(RAEN)은 '자연 속에서 농업과 양조학의 연구(Research in Agriculture and Enology Naturally)의 약자다. 여기에 레인의 가치와 철학이 다 담겼다고 보면 된다.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는 순전히 자연의 힘에 맡긴다. 포도나무에 해충이 있다면 제초제를 뿌릴 것이 아니라 새가 잡아먹도록 새둥지를 지켜준다. 포도밭 주변으로 둘러싼 숲과 나무들도 그대로 두고, 포도나무 사이로는 야생화가 만개한다. 야생동물 구조와 방사 지역으로 지정돼 스라소니와 여우가 살 정도다.
카를로는 "모두들 지난 10년 간 기후가 극단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라며 "지구상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면적의 절반이 농지일 정도로 비중이 높은데 잘못된 농법으로 생물다양성이 무너지고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와인과 무슨 상관이냐고? 기후변화로 최근 10년을 놓고 보면 9번은 무덥거나 따뜻한 빈티지, 그 중에서도 3번은 와인을 만들기 힘든 재앙적인 기후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카를로는 와인메이커가 아닌 땅을 섬기는 와인재배자이자 환경운동가다. 2016년부터는 '모나크 챌린지'를 시작했다. 자연 친화적인 농업을 실천하자며 목소리를 높이고, 생물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모나크는 우리말로 제왕나비를 말한다. 카를로가 어릴 때만 해도 지천에 날아다니던 모나크는 이제 대표 멸종위기종 중 하나다.
와인 양조 역시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했다. 토착효모를 쓰고, 정제나 여과도 하지 않는다.
특히 레인은 줄기 등을 제거하지 않는 전송이 발효를 한다. 보통 포도알만 즙을 내서 기계로 잘 섞이게 해주면 발효는 빨리 되지만 열이 나면서 알코올 도수가 올라가고 섬세한 아로마가 없어진다. 반면 포도송이째 탱크에 넣으면 층별로 발효 속도가 달라 시간은 길게 걸리지만 낮은 온도에서 장미꽃 등의 향이 잘 살아난다. 부르고뉴보다 더 부르고뉴 같은 와인이 가능했던 비결이다.
'레인 소노마 코스트 피노누아'는 우리 나라에 들어올 땐 와인명을 간결하게 했지만 원래 '레인 소노마 코스트 로얄 세인트 로버트 퀴베 피노누아'로 할아버지이자 미국 와인의 전설인 로버트 몬다비에게 헌정하는 와인이다. 레인 설립 10주년을 맞은 지난 2023년에는 와인스펙테이터 톱100 가운데 4위에 오르기도 했다. 2021 빈티지였다. 이번에 시장에 풀리는 2023 빈티지 역시 제임스 서클링(JS)으로부터 99점을 받았다.
카를로는 "2023년은 레인을 시작한 이후 최고의 빈티지가 될 것"이라며 "덥지 않은 날씨로 다른 해 대비 수확을 한 달은 늦게 시작하면서 포도가 긴 시간 천천히 익으며 풍미를 축적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레인 프리스톤 옥시덴탈 피노 누아'는 레인의 포도밭 가운데 가장 서늘한 곳에서 키워냈다. 높은 고도에 해안가 영향을 받아 완숙에 시간이 걸리지만 그만큼 집중력이 있는 와인이 된다. 좋은 구조감을 주는 산도에 매끈한 타닌, 미네랄 등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2023 빈티지가 JS 100점을 기록했다.
그는 "인생의 한 축은 최고의 와인을 만들기 위한, 다른 한 축은 환경을 보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와인 한 잔 일지언정 우리가 먹고 마시기 위해 선택한 모든 행동의 결과는 당장 디디고 서 있는 땅, 그리고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머리로는 다 아는데 역시 실천이 어렵다. 이토록 사랑스럽고 우아한 피노누아를 계속 마시기 위해서라면 과감한 행동주의자로의 전환을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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