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변두리 시골마을에서 정치를 새롭게 배워간다. 그저 나날이 정치가 일상이고 일상이 정치란 걸, 이곳 지금에서야 더욱 실감한다. 총선거를 열흘 가량 앞둔 지난 일요일 마을 대청소가 이뤄졌다. 지난 척사대회 이후 한달여 만이다. 마을사람 몇몇은 개울가나 논두렁 언저리에 걸쳐 있는 비닐, 패트병 등을 주웠다. 또 몇은 회관앞 대형 화분에 흙을 갈아주고 퇴비와 비료를 넣어 덧거름작업을 펼쳤다. 작업은 순조로왔다. 그런 날의 마을사람 표정이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그리고 임시총회도 열렸다. 안건은 마을재정, 한전지원금, 물보조금에 관한 것으로 그다지 긴급하지는 않았다. 다만 대청소를 겸해 모여보자는 생각이었던 듯, 이장은 주민 의견을 듣고 싶어했다. 한전지원금은 송전선 설치로 인한 것이고 물보조금은 상수원보호권역에 주는 비용이다. 결론은 지원금으로 유휴농지에 환금작물을 심어 수익을 더 올려보자는 의견으로 모아졌다. 마을 재정 건은 어떤 이가 급전이 필요해 대출 담보로 잡혀던 걸 해소했다는 내용이었다. 의례적인 회합이 이뤄지고 나서 그 다음에 자연스럽게 정치얘기가 이뤄졌다. 삼삼오오 잡담과 여흥이 펼쳐졌을 때다. 단연 주제는 국회의원 선거. 젊은 층은 대체로 여당 심판에 대한 목소리가 높았고 노년층은 국정 안정을 선택하겠다는 분위기였다. 이런 분위기는 전국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그저 그런 풍경일 것이다. 그러나 예전의 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것만해도 여기서는 세상이 달라진 것과 다를 바 없다. 일부는 화를 내며 언쟁하듯 성토하고 싸워서 무엇하냐며 중재하는 이도 있었다.
그중에서 90대 한 노인은 아주 예전에 있었던 한강백사장 유세 등의 기억들을 소환하며 전설같은 얘기를 펼쳐놓기도 했다. 처음 듣는 얘기다. 그리고는 요즘 그때 가슴 뛰던 연설을 다시 보게 된다고 회상했다. 아마도 신생정당에 대한 말인 듯 싶다. 여지껏 그의 정치색을 알 지는 못했다. 한번도 그런 얘기를 한 적 없어 조금은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살아서 마지막 투표가 될 거라는 말에는 모든 이들이 놀라워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을 화장장 설치에 대한 건은 결론이 유보됐다. 최근 어떤 사회단체에선가 우리 마을 뒷산에 화장장을 건립한다는 의견서를 시청에 접수, 마을에 의견을 물어왔다. 어떤 이는 오늘날 화장장의 모습을 설명하며 그다지 혐오시설이 아니고, 우리가 무작정 반대할 것만도 아니라고 말했다. 젊은 이장은 마을 노인들 앞에서 화장장 얘기를 기피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런데도 어느 노인도 대화를 저지하진 않았다. 몇년전 송전탑 확대 및 변전소 조성문제로 마을 전체가 소란스러웠을 때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그러면서도 다들 적당히 언쟁하고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자기 주장을 펼쳤다. '이게 우리 마을 사람들 맞나'싶었다. 그래서 이날 풍경을 '적당히'라고 하는 게 가장 맞을 것 같다. 결국 화장장 설치안이 구체적으로 나올 때 다시 논의하자고 유보하는 걸로 얘기를 마치는 걸 보며, 그 자연스런 분위기가 좋았다. 한전지원금 등 마을 안건부터 선거, 화장장 등의 문제를 이처럼 실감나게 대화하면서도 주민들이 갑자기 정치 수준이 몇단계는 높아진 것 같았다. 도대체 이게 예전의 이웃들이 맞나.
마을사람들의 정치력이랄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그래서 봄이 오는 길목에서 새순을 피워내는 세상 이치가 새삼스럽다고 할까. 오후 늦게 집에 돌아와서는 SNS에서 세상 목소리를 들어보기도 했다. 그저 모든 정치를 새로 배우고 느낀 하루, 달라질 세상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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