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내에 가는 버스에서 바라보니 도로에는 태극기 휘날리 듯 현수막이 요란했다. 모든 내용을 자세하게 보기는 어려웠다. 대체로 그런 내용이 많았다. '자동차세 납부' 안내, '○○○ 서기관 승진', '○○○ 대통령 표창' 등 어느 때보다도 많다. 자동차세 납부 안내는 읍사무소에서 곳곳에 걸어놓았다는 걸 금방 알겠다. 여러 현수막 가운데서도 숫자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반면 '○○시 행정자치국장 모 서기관 승진' 현수막은 몇 백미터 마다 있었다. 종친회, 동문회, 이장단 협의회, 마을 주민 등 경축이라고 그런 난리도 없다. 하여간 우후죽순으로 걸어놔 어떤 이는 승진자가 여럿인 줄 착각할 정도다. 여러 명의로 내걸은 경축이라니. 서기관이라는 직책이 이렇게 요란스러운 것인지….
오래전부터 과천 정부청사, 서울시청, 세종 등 정부 부처를 출입하면서 수도 없이 만나 얘기하고, 토론하고, 설전하고, 논쟁했다. 취재하느라 일상적 교류 대부분은 서기관 이상의 직책들이었다. 그래서 이 정도로 난리법석일 줄 꿈에도 몰랐다.
하여간 그런 경축 현수막보다 더 돋보이는 건 대통령 표창 현수막이었다. 우선 숫자로 압도적이다. 버스 창문 너머로 언뜻 눈에 띄는 그런 종류의 현수막은 세건 정도. 개인, 단체, 지역 등 세군데가 다른 명목의 표창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현수막은 홍수를 이를 지경이다. 그도 그럴 것이 승진 경축 현수막 처럼 같은 표창에도 관련자들이 모두 경축을 내걸었으니 그렇지 않겠는가.
우리 지자체는 상수원보호권역으로 세개의 읍, 시청 소재의 행정구역 그리고 여러개의 면단위가 있다. 그러면 우리 구역에서 대통령 표창이 3개라면 다른 읍면에도 이 정도의 표창이 주어졌다면 우리 시에는 열댓개의 표창이 있어야 평균적이라고나 할까. 이를 경기도 나아가 전국으로 확장해 보면 최근 뿌려진 대통령 표창이 수만개도 넘을 듯 싶다. 상상이 되시는가. 표창 안 받는게 더 돋보일 듯. 하여간 다른 구역의 대통령 표창을 알수는 없다.
대통령 표창이 왠지 값이 떨어져 보이고 선양해야할 느낌도 없고, 표창으로 감격스러울 곳에는 좀 미안하지만 그다지 경축에 공감하기도 쉽지 않다.
폭염으로 지쳤던 무렵 서울시내 한 복판은 물론 이곳에도 엄청난 현수막 홍수가 덮친 적 있다. 대체로 여러 정당들이 정책을 홍보하는 것도 있었으나 상대편에 대한 혐오, 본노, 갈등을 조장하는 욕설도 많고 그 숫자도 많아 피로감에 쩐 적이 있다. 당시 혐오를 조장한 정당은 어디랄 것도 없었다.
지난해 말 예산안이 통과되자마자 한차례 현수막 홍수가 휩쓸기도 했다. '○○∼○○도로 확장공자 ○○억원 예산 확보'라는 거대정당 두곳이 현수막을 내걸어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어느 당이 힘써서 예산을 따냈다는 것인지, 아니면 양당이 협력해서 이룬 건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런 걸 그렇게 걸어놓은 배짱도 이해하기 어렵고.
서기관 승진 경축카드, 대통령 표창 카드 정도는 애교로 봐줄만 하다. 물론 그런 현수막에 비판이나 부정적인 의견을 비치고 싶지는 않다.그렇더라도 SNS가 넘치고, 소통 방식이 너무도 넘치는 세상에서 현수막은 어쩐지 구태스럽다. 곧 총선이 다가온다. 이런 정도는 예고편에 지나지 않을테니, 그땐 정당과 출마자들이 내거는 현수막이 지구를 휘감고도 남을 것이다. 다가올 현수막 홍수에 눈쌀 찌푸리거나 비판하기도 힘겨워질게 벌써부터 피곤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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