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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성의 전원에 산다] 어느 강남아파트 순례기

이규성 선임기자.

크리스마스 이브, 그날 서울 한 친구의 초대를 받았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잣나무골은 차량이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온통 눈세상. 그래도 서둘러 눈길을 나서면서도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친구 집들이에 가는 길이다. 가락시장에 들러 함께 먹을 생선회와 작은 선물 등을 사고 나자 열두시에 임박했다. 전철을 다섯번을 타고서야 도착한 것이다.

 

그의 집은 가락시장 인근 대모산 아래다. 예전에는 저층 주공아파트가 즐비했던 곳으로 최근 재건축이 이뤄져 강남의 일부로 각광받는다. 재건축이 이뤄지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다. 따라서 이곳에 온 기억도 까마득하다. 아니 와 본 적 있었나 싶다. 하여간 5층 규모의 서민아파트가 여러 단지로 흩어져 있고 단지마다 나무들이 많았던 기억은 난다. 그래도 지금은 어엿한 강남이라고 재건축아파트는 3.3㎡당 수천만원에서 1억원이 넘는 경우도 허다하다.

 

아파트에 들어가는 게 복잡했다. 여지껏 전원의 단독주택에만 살아온 내게는 생소한 방식이고 쉽게 실행되지도 않았지만 기어이 그의 23층 아파트에 도달해서는 주위 풍경에 탄성이 터졌다. 이미 단지에 도착해서 새 아파트단지 답게 조경이 예전과 사뭇 다르다는데 크게 놀라건 사실이다. 하여간 산으로 둘러싸인 모습이며 눈앞에 펼쳐지는 강남 모습은 내게 생소하면서도 새로왔다.

 

축하와 덕담이 오가고 술, 음식 그리고 대화가 무르익었다. 친구와 나는 오래전 얘기를 꺼내게 됐다. 그는 친하다 못해 혈육 이상의 수십년 지기다. 막 결혼해 전세집을 오가던 무렵 그때도 서울에서 내집 갖기가 어렵기는 마찬가지. 우리의 고민은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최대의 목표였던 것 같다. 우리는 함께 집 마련을 고민했고 청약통장이 무슨 소용이냐며 새 길을 찾기로 했다.

 

그래서 선택한 길이 나는 전원행이었고 친구는 재건축대상 서민아파트 구입이었다. 친구의 방법은 그랬다. 당시 13평 주공파트가 7000만원. 전세 5000만원 끼고 2000만원을 들여 구입했다. 요즘 그걸 갭투자라고 하던가. 나중에 재건축되길 기대하고 성남으로 옮겼다.

 

나는 모든 돈을 다 들여 200평 농지를 사서 집을 지었다. 이렇게 내집마련의 길을 나선 것이 둘의 어마어마한 격차를 만들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바로 그 아파트가 4년전 재건축을 완료돼 이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처음 친구가 저층 주공아파트를 살 당시 늙어서 이곳에서 함께 살자며 나를 잡아 끌었지만 끝내 나는 그렇게 하지 못 했다. 그렇다고 지금 '왜 더 나를 설득하지 않았냐', '그때 그런 기회를 놓친게 안타깝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는 이제 평당 1억원을 호가하는 집을 가졌고 나는 당시와 거의 비슷한 집을 가졌다. 재산상으로 치면 그와 하늘과 땅 차이다. 세태가 그렇게 변화시켜 그건 인생의 성적표인양 우리를 따라붙게 됐다. 친구와 한동안 27년의 시간을 되짚어보고 나서야 강남유람기를 마칠 수 있었다. 물론 집테크에 어두운 내 방식에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만 숲과 자연에 좀 더 가까웠던 시간들에 대해 깊은 성찰,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이 더 함양된 것인가하는 물음은 있다.

 

대모산 아래 언제 또 가 볼지는 모른다. 그러나 집에 대한 갈림길, 그리고 달라진 형편은 여전히 남아 있을 것 같다. 집이 주거가 아닌 재산으로 보는 세상이 끝나지 않는 한 나는 실패자일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주택 공급을 담당하는 정책 담당자, 공급자에게 바램이 있다. 사람들이 집 때문에 갈라지고, 또 갈라지도록 만들어가는 세상에 일조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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