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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성의 전원에 산다] 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한 하루

이규성 선임기자.

3년만에 마을 대동회가 열렸다. 코로나로 멈췄던 시간이 다시 이어진 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도 활기가 넘쳤다. 대동회는 마을 주민 전체가 모여 주요사항을 결정하는 총회다. 주말 오전 10시 마을 회관, 인삿말과 덕담이 오가고 사업보고 및 결산, 감사보고, 마을 회칙 안건 제출 등 회의가 순조롭게 이뤄졌다. 회칙 개정 관련에는 설전이 오갔다. 매번 이런 시간이면 진지하기만한 분위기가 낯설 지경이다.

 

각자의 의견을 들어보면 어느 누구도 틀린 말을 하는 경우가 없다. 다 맞는다. 어떤 때는 서로 다른 의견인데 다 맞을 수 있다는게 신기하기까지 하다. 그러면서도 결론에 도달한다는게 놀랍다. 문득 국회의원들을 데려다 대동회에 참여시켜도 좋을 듯 싶다.

 

아파트에 살던 날도 생각 났다. 아파트단지에선 반상회를 가졌다. 반상회에는 주로 부녀들이 많았고 아내가 참석했었다. 나도 두어번 함께 나가 인사도 나눴던 것 같다. 우린 신혼으로 어린 편인데다 처음 아파트 생활이라서 주로 듣고 분위기 파악에 열중했었다. 하지만 반상회에 다녀온 뒤로 주민들과 인사도 나눌 수 있어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반상회는 한달에 한번. 동단위로 주민 끼리 안건, 제안 등을 토의하고 화합을 다지는 시간이다. 내가 살았던 곳은 서울 외곽도시 저층 주공아파트 단지로 지금은 재건축이 이뤄졌다. 당시 희안한 게 있었다. 15, 17, 19평형으로 이뤄진 단지내에서 같은 평형에 사는 주민들끼리만 서로 친했다. 아이들도 그랬다. 같은 동에서도 15평 주민이 17, 19평 주민과 그다지 어울리지는 않았다. 거꾸로 19평 주민이 17, 15평 주민과는 따로 놀았다. 그런 모습에 어느 날 아내에게 15평 혹은 19평 사는 주부 중에서 친한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아내 역시 친한 사람은 17평 뿐이고 다른 평수의 사람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왜 그걸 구분하고 사느냐고 물었더니 굳이 그런 적도 없고 그럴 이유가 없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왜 ?', '그냥 그렇게 됐다'고.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런 칸막이는 아파트를 떠날 때도 여전했다.

 

여기서는 누구도 집 평수나 재산 정도로 친분이 나눠지거나 교류가 한정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그런 생각속에 회의가 이어지고 안건 토의가 이뤄졌다. 가장 큰 토의는 마을 땅 매매건, 아파트에서 마을 청소와 단지 가꾸기였던 걸 생각하면 차이가 컸다. 마을 주요 사업만해도 그렇다. 총무의 보고에 따르면 잣나무골 진입로 다리 신설, 창고 신축, 회관 주변 대형 화분 설치, 마을 일부 상하수도 설치, 마을 야유회, 하천 일부 복개 등등 생각 이상으로 많았다. 일부는 노인들이 자체적으로 수행한 것도 있고, 일부는 마을 예산을 투입하거나 지자체 사업 협력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일을 처리했다.

 

그리고 가장 놀라웠던게 총회가 끝나고 주민 회식에 등장한 식사. 올해는 특별히 소머리국밥이 나왔다. 엊저녁부터 부녀회 두분이 회관 주방에서 소머리를 밤새 고왔다고 하니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에서도 먹어본 적 없을 만큼 너무도 맛있었다. 소머리국밥은 전통도자기와 더불어 우리 지역의 명물이다. 국밥과 수육이 차려지고 막걸리 한 순배가 돌고 나자 주민들은 3년 만에 치뤄지는 총회가 어느 때보다도 즐겁다고 이구동성이었다.

 

회의하고 밥 같이 먹고, 웃고 떠들고. 연초 대보름을 기약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그날 회관앞에서 척사대회가 열린다. 윷놀이하며 장작불에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술도 나눈다. 기대된다. 단지 함께 모여 행복한 하루, 어울려 산다는게 실감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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