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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이규성의 전원에 산다] 귀가길 가로등

이규성 선임기자.

마을 회관 앞, 막차에 내렸을 때 잣나무골이 환했다. 하루 열대도 안 되는 마을버스가 발이 된지 얼마 되지 않는다. 경전철이나 광역시내버스로 서울 등으로 오가고 있다. 마을버스가 아니고서는 택시를 불러야 한다. 그렇게 귀가하는 길, 산비탈을 따라 10여가구가 사는 잣나무골까지 1㎞ 남짓이다. 헌데 가로등이 열개는 넘는 듯 하다. 100m 정도 하나씩, 가운데쯤 두개가 켜져 온통 밝은 세상이다. 여느 때라면 '하루동안 고단했지. 무사히 돌아왔구나'라며 등대처럼 발길을 인도하는 가로등이 여간 반가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은 그렇지 않다. 이런 산중에도 가로등을 밝혀야할 만큼 전기가 넘치는건 아닐텐데. 그런 생각이 앞선다. 가로등 빛에 왠 죄의식? 굳이 국민 세금 걱정인 것도 웃기긴 한다. 이런 감정을 갖는 이가 이 세상에 얼마나 된다고, 편의를 제공받는 자로서의 맘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왜 이런 곳까지 불 밝힌 이유를 모르겠다. 어두어진 후 오가는 이도 없는, 굳이 여길 들어오는 이라면 다들 차 타고 오는데. 안전을 살필 이유는 아니다.

 

도난, 침입 등 범죄때문이라면 그 또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 내가 여기 온 이후로 주변 어디서도 도난, 침입 등의 불의한 사고가 벌어졌다는 얘기를 들은 적 없다. 이주 초기 나 또한 주변사람들로부터 그런 걱정을 여러 번 듣기는 했었다. 하지만 도시보다 범죄율이 더 낮다는 건 여러 지표에서도 나타난다. 심지어는 그런 일이 있다. 처음 전원생활이 궁금한 친구들이 주말마다 찾아와서 손님치레로 몇개월을 보내고선 어느 주말 집을 비웠었다. 그런데 그날 한 친구 가족이 하염없이 기다리다 모텔 신세를 지고 다음날 돌아갔었다. 핸드폰이 나오기 전 일이다. 그날 이후 집을 나서더라도 열쇠를 잠그지 않기로 했다. 그런 이라면 그냥 빈집에라도 들어가서 자고 가라고 문을 닫지 않는다. 누가 이곳까지 와서 무엇을 훔쳐가거나 침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설령 여기까지 털러 온 자가 그냥 돌아갈 리도 만무하고. 물론 가져갈 것이라곤 TV나 냉장고, 침대, 책장 등 가구밖에 없다. 그게 돈이 될 리도 없다. 그러니 잠근다고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차라리 그게 가상한 걸로 치자. 그리고 가져다 잘 쓰든지'라는 생각에 맘이 편안해졌다. 전원살이에 두려울 것도 없었다. 어느 집이 전원에 담장을 쳐두는 경우도 없는 데다 그 정도는 안심하고 살아도 되는 세상이라는데 동의했다. 도시에서는 여러 침입자나 묻지마범죄 등으로 큰 뉴스가 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가상하다. 도둑질하러 산골짜기까지 침입할 정도라면.

 

그럼, 뭐 때문에? 이 산중에 여러 개의 가로등을 밤새 켜둔단 말인가. 안전? 보안? 그건 내게 있어 다 틀린 말이다. 여기 동네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누가 불을 켜두고 싶어하는건지? 잣나무골사람들 아니면 마을사람들, 혹시 정치인들. 도무지 모르겠다. 잣나무골을 오르면서 가로등이 없어 불편한 적은 없었다. 시골이 다 그렇지 않는가. 하여간 여러 개의 불빛 아래를 걸어 집에 도착해 가로등이 켜진 길을 내려다 봤다. 마을도 환하다. 가로등과 공장 불빛이 어우러져 흡사 도시스럽다고나 할까. 전원의 맛은 사라지고, 불편하기는 전원보다 더 하고.

 

가로등을 설치하고 켜는데도 어떤 이들의 노력, 의지가 들어가 있다면 불을 끄는데도 그만큼의 수고가 필요할 것 같다. 우선 마을 회의에 안건을 제출하고, 주민들의 합의가 필요하고, 시청에 의견 전달하고. 이 나라, 민주주의세상에서 어딘가 불편한 이면이다. 굳이 이의제기하기가 좀 튀는 사람같고. 그걸 감수하기란 싶지 않을 듯 싶다. 하여간 내가 사는 산중에도 밤마다 불빛이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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