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마을 단체여행 버스에서 마을 총무는 돈봉투 하나씩을 낸 찬조자의 이름을 불렀다. 매번 여행 경비 중 일부는 찬조로 이뤄진다. 오랜 관습이다. 전입 초기 지역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의 찬조금이 솔찬했다. 심지어 기백만원이 넘는 찬조도 있었다. 그 다음으로는 마을에 공장을 지은 업체들이 몇 십 만원 가량 마을에 희사하기도 한다. 우리 마을엔 생활공예품을 만드는 기업, 의료기기업체, 골판지 생산업체, 가구공장, 마늘장아찌를 만드는 공장, 소똥·닭똥을 발효해 퇴비를 만드는 업체, 피자공장 등 10여개가 있다. 규모는 그다지 크지는 않다. 그래도 잔업·특근할 정도로 활발하다. 인근 안거리 한식뷔페식당 세군데에 저녁 시간에도 노동자들이 북적이는 걸로도 대번 알 수 있다.
그런데 올해 야유회에는 마을의 한 가정에서 100만원, 또 한 가정에선 20만원이라는 찬조금이 나와 모든 이들이 의아해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예상치 못한 찬조금에 놀라자 총무는 20만원 찬조금의 사연을 들려줬다. 이날 두사람이 눈길을 끌었다. 바로 몇해전 마을로 이사온 할머니의 딸이 첫번째다. 딸은 50대, 서울에서 산다. 그녀가 찬조한 까닭은 그랬다. 어머니와 매일 마을노인정에서 들은 얘기며, 사연들로 한 시간 이상 전화를 나누다보니 아예 여기가 고향같아서 이번엔 꼭 가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녀는 얘기를 마치고 노래도 두곡이나 불렀다.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시키고 앵콜을 요청한 때문이다. 아마도 그녀를 환영한다는 의미일게다.
다음으로 100만원을 찬조한 이는 우리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적은 카센터 사장이다. 40대 중반인 그는 내가 이 마을에 전입할 당시 고등학생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그는 우리나라 굴지의 자동차서비스회사에 들어가 정비를 익혀 마스터, 명장 등의 칭호를 얻을 정도로 경력을 쌓았다.
그가 얼마전 집을 개축, 입주했다. 그래서 부부가 합의끝에 집들이 대신 마을에 찬조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6년 전에 결혼, 샌드위치 패널로 지은 집에서 신혼살림을 꾸리다 마침내 징피패널 벽체와 아스팔트 슁글로 지붕을 얹은, 번듯한 집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졌을 때는 창고같이 볼품없고 작아서 신혼살이도 만만치 않았을거다. 40대는 극히 드물어 마을사람들이 무척 아끼는 부부다. 게다가 아이 낳고 새집 짓고 인근에 카센터를 차려 어엿한 가정을 이뤘으니 마을사람들이 칭송할 만도 했다. 그러면서 집들이 대신이라고 찬조금도 내놓았다니 더욱 반겼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부모는 지독히 가난했고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까닭에 짠했던 까닭에서다.
잣나무골에 들어와 몇 번의 집들이를 경험했다. 출장뷔페로 잣나무골 입주자들과 회사원들을 불렀던 앞집, 작년에 롤케익과 사탕 한 봉지를 돌린 윗집, 마당에 노래방기기를 차리고 국밥을 대접했던 옆집 등 새삼스레 '집들이'란 단어에 유독 꽂힌 날이기도 했다.
30여년전 집들이, 돌잔치가 몰린 적 있다. 라이프스케줄 상 친구들이 막 결혼하던 때다. 그때 집들이하러 상계·중계동, 상일동, 잠실 등 저층 주공아파트가 즐비했던 동네를 많이 찾곤 했다. 신혼부부들이 작은 전세집에서 새 출발하기에 적당해서 내가 아는 이들이 많이 살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곤 또 얼마 후 분당, 일산 등 신도시 고층아파트로 집들이를 다녔다. 내가 이 마을로 오던 당시 도시로 이주한 아버지집에도 집들이 갔던게 분당신도시다. 그 신도시 이후 집들이는 거의 잊혀진 말이 됐다가 이번 야유회에 번쩍 귀에 꽂혔다. '집들이', 그래 그런 말이 있긴 있었지. 잊혀진 추억, 단어를 마을사람들이 되찾아준 날이다.
Copyright ⓒ Metro. All rights reserved. (주)메트로미디어의 모든 기사 또는 컨텐츠에 대한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를 금합니다.
주식회사 메트로미디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17길 18 ㅣ Tel : 02. 721. 9800 / Fax : 02. 730. 2882
문의메일 : webmaster@metroseoul.co.kr ㅣ 대표이사 · 발행인 · 편집인 : 이장규 ㅣ 신문사업 등록번호 : 서울, 가00206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2546 ㅣ 등록일 : 2013년 3월 20일 ㅣ 제호 : 메트로신문
사업자등록번호 : 242-88-00131 ISSN : 2635-9219 ㅣ 청소년 보호책임자 및 고충처리인 : 안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