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이면 기다리는 축제가 있다. 바로 그 축제날이 왔다. 남한산성 축제, 도자기 축제, 팔당 축제 등 내로라하는 축제가 수두룩하고 일년 내내 축제가 이어지는 이곳에서도 별반 알려져 있지 않은 축제다. 매년 전국에서 열리는 수천개 축제 중 하나로 명함을 내밀기에는 언감생심. 그저 시골마을 몇 모여 치뤄지는 아주 작은 행사일 따름이다. 요즘 지방마다 다양한 축제가 시끌벅적할 정도다. 예산을 잔뜩 들인 지방자치단체장 치적을 내세우기 위해 호들갑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여기 축제는 한해동안 생산한 것을 펼쳐놓은 일종의 추수감사 같기도 하고 그저 마을 단합대회 처럼 보인다.
최근 몇 년 간 코로나19로 멈췄다가 올해 다시 열려 지역민들은 축제를 새삼 반기는 분위기다. 그날 행사장 초입에는 엿 파는 각설이들의 가위소리가 흥겹고, 몇걸음 더 가면 튀르키예인의 아이스크림 막대기 장난도 재미스러웠다.
기다려온 탓일까. 여기, 산 여러개가 사방을 에워싸고 있는 분지형 산골마을로 수도권 변두리 중의 변두리다. 그 축제판을 기다려온 이유는 아주 특별한 음식을 맛볼 수 있어서다. '순대'다. 순대란 음식은 워낙 흔한 것이어서 어디서나 사 먹을 수 있지만 축제날 순대 만큼은 다르다. 전시되고 판매되는 물품도 능이버섯 같은 자연산 먹거리, 지역예술인이 직접 만든 공예품, 산비탈밭에서 재배한 고구마, 토종 약재, 집에서 기른 콩으로 만든 된장, 분재 등 그저 그런 생산품이다.
순대 얘기전에 축제의 유래를 알면 놀랍다. 이 지역에 세개의 마을이 있다. 상품리, 하품리, 명품리다. 그런데 하품사람들이 농산물 포장박스에 '하품리'라고 쓰여질 때마다 속상하다고 하소연이 넘쳤다. '누구네 생산품은 하품인 거냐'고. 이웃마을 사람들끼리도 '너희들은 하품'이라고 놀리기까지 했다. 같은 지역에서도 인근 마을은 상품, 명품인데 자기네만 하품이라고 울상이다. 그런 하품사람을 보는 명품·상품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낸 것이 '품실'이란 브랜드다. 명품, 상품이란 명칭을 버리고 하품을 포용해준 지역민들의 따뜻한 마음이 만들어진 이름으로 축제가 유래됐다. '품실제' 그날은 산나물, 약재, 버섯 등 지역 특산물이 총 출동하고 마을에서 장만한 음식도 한껏 맛볼 수 있다.
마을 부녀회 먹거리장터에 순대는 늘상 인기였다. 당연히 맛이 일품이다. 부녀회가 밤새 만들어 즉석에서 쪄내주는 순대는 쫄깃한 돼지막창에 선지, 파, 마늘 등 양념을 버무려 정성드레 만든다. 요즘 그런 맛을 보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더욱이 오랫동안 잊고 산 맛이어서 약간은 투박하고도 구수하고 깊은 맛, 산골마을 사람같이 순박하고 정이 넘치는 느낌이랄까. 사는게 그 맛과 멀어지는 것 같아 은근히 그리울 때쯤 문득 여기서 만나니 안 기다릴 수 있겠나.
축제장에는 심폐소생술을 가르치는 소방공무원, 노인복지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복지센터까지 나와 예전보다 프로그램이 더욱 풍성하고 다채롭다. 참여하고 즐길 거리도 많았다. 지역 초·중등 학생들의 공연부터 풍물놀이, 향토가수 및 면민 노래자랑, 시·그림 전시회, 보물 찾기, 등산대회, 윷놀이, 운동회, 오징어게임 등 이틀동안 지역민의 집단 퍼포먼스는 마냥 즐겁지 않을 수 없다. 그곳에서 먹는 순대국밥에 오늘 만큼은 행복해질 수 있어 나는 그 축제장에 꼭 끼려고 한다. 그런 날 축제장에서 순대를 먹는 동안 나는 외지인이 아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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