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하러 고향가는 길, 나와 아버지는 연례행사 처럼 서해대교를 건넌다. 마침내 다리 위, 올해도 아버지는 말하신다. "참 좋은 세상이다. 차 타고 바다를 건너는 날을 살 줄이야." 사실 이 말은 인천대교를 건널 때도 하신 적 있다. '좋은 세상이라니' 내게도 그런가.
한식, 추석과 설 명절. 대개 아버지와 내가 서해대교를 건너는 때다. 그 외에도 고향 친지 등을 만나기 위해서도 다리를 건넌다. 서해대교 개통 이전 명절 때 10시간은 보통, 다리가 생기고는 평소 한시간이면 고향에 닿는다. 간혹 석양무렵 바닷길을 붉게 물들인 장엄함이란….
아버지와 이 다리를 건넌 이력은 벌써 20여년전째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직전 아버지는 시골에서 분당으로, 나는 서울에서 곤지암으로 각각 주거를 옮겼다. 아버지는 환갑 한참 넘은 나이에 신도시민이 되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고향을 등졌고, 나는 산골로 살러 왔다. 그후 두어해 지나고부터는 이렇게 귀향길을 동행하며 '좋은 세상 타령'을 나누고 있다.
처음부터 다리를 건넌 건 아니다. 서해대교가 생기기전 한동안 삽교천방조제길로 고향엘 오갔다. 방조제길 이후 바다 위 다리가 생기고, 그 다리를 건너는 여정은 아직 이어지고 있다. 지금 아산만 일원은 생산량, 물동량, 기업 및 창업수 등에서 울산을 육박할 정도로 번성, 풍경마저 나날이 달라지고 있다. 곳곳에 국가공단, 지방산단 등은 물론 관광·휴양단지가 들어서고 마을마다 공장이 늘어서 옛 모습을 찾기가 만만치 않다. 길을 헤멘 적도 여러번이다. 대개 자동차, 제철, 배터리, 전자, 에너지, 화학 등 여러 연관산업을 망라해 공장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청년시절 아버지는 염전의 염부였다. 바닷물을 끌어다 말리고, 햇빛에 구운 소금을 끌고, 다시 지게로 짊어지고 나와 창고에 부리고. 고된 노동과 피땀 어린, 징글맞은 그 바다다. 그런 당신에게는 감동이라니. 하여튼 다리 하나로 아버지에게는 좋은 세상인지 몰라도 내게는 꼭 그런 것만 같지는 않다. 속으로 되뇌인다.'아버지와 나는 왜 다른 세상에 함께 사는건가요?'.
올해도 벌초하러 가는 길, 서해대교를 건너며 아버지는 또 똑같은 감격을 토로하셨다. 그리고는 10년 후, 20년 후 그 이후의 세상은 어떨 것 같냐고 물었다. 한동안 멍했다. 아버지는 또 "이 다리, 우리 당진사람이 놨댜"고 하신다. 다리가 완공돼서 고향사람들을 초대, 잔치도 했단다. 진짜인지, 지어낸 말인지. 어쨌든 당진 사람이 20리 바닷길에 다리를 놨다는 전설 하나가 지어진 거, 생길만도 하긴 하다. 아니면 당진 사람은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단지 그걸로도 감격해하는 아버지 모습도 나쁘진 않으니.
총연장 7310m. 서해대교는 물동량 뿐만 아니라 그렇게 우리 부자의 한 세월도 너끈히 건너주고, 이어주고 있다고나 할까. "아버지. 이 다리는유. 엄청난 지진이 와도 끄떡없고유. 태풍이 와도 미동도 없대유." 아버지의 감격을 더해주느라 겨우 맞장구친 말이다. 나의 어설픈 리액션에 '그려이~'하고 놀라시는 모습도 여전하다.
나도 내 아들과 서해대교를 오가게 될거다. 그땐 무엇으로 나는 '좋은 세상'타령을 하게 될지, 아무튼 나는 서해대교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다리 하나로 아버지에게는 좋은 세상이니 나도 그렇다고 하자. 다만 더 오래 아버지와 여길 함께 건너다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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