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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이규성의 전원에 산다] 경자유전의 법칙

이규성 선임기자.

내 땅에는 주인을 알 수 없는 농지가 하나 붙어 있다. 그 농지는 이곳에 정착한 이래 지금껏 텃밭으로 쓰고 있다. 며칠전 지적공사에서 잣나무골 일대 지적측량을 하고 각 경계에는 경계표시 말뚝을 박았다. 나중에 파란 플라스틱 말뚝을 본 아내는 '이게 우리 경계냐'고 놀라워했다. 마당인줄 알았던 땅의 상당부분이 우리 소유가 아닌 옆 농지였기 때문이다.

 

하여간 농지의 소유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다. 빈땅이므로 그 땅에 상추도 심고 콩도 심고 텃밭으로 쓰고 있다. 주말마다 텃밭에 앉아 보내는 시간은 그 어떤 휴식보다 더 휴식다웠다. 텃밭을 짓던 어느 해 애초 나에게 땅을 판 이가 "그건 남의 땅이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당신도 땅 팔았으니 시비걸 자격이 없다"며 "주인이 나타나서 무얼하겠다고 한다면 그렇게 하면 될 노릇, 쑥대밭으로 버려져 모기, 벌레 때문에 우리만 고통스럽다. 그래서 뭐라도 가꾸는 거다"라고 응수했다.

 

농지 주인이 누구인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땅 사두고 그럴 수 있을까. 늘상 궁금하기는 했다. 농지 일부분인 둑에 오가피와 두릅나무를 심고 일부에는 부추와 취나물을 기른다. 해마다 그냥 따먹기만하는 것들이다. 농사짓기가 여의치 않아 작년에는 텃밭에 아예 과일나무 몇그루를 심었다. 마냥 내버려둘 수 없어서다.

 

또 다른 한편에는 윗집 텃밭이 있다. 주말주택으로 쓰고 있는 80대 노인이다. 그는 주말이 아닌 평일에도 텃밭을 일구러오곤 한다. 노인이라고 하기에는 60대 정도로 활기차고 건강하다. 지금도 젊은 사람들과 일하는 현역 경영인이다. 그는 내로라하는 토목, 설계, 감리 등을 하는 종합엔지니어링을 운영하며 전 세계에 신도시, 교량 및 토목 등 건설수출의 역군이다. 회사를 경영하는 일도 아마 텃밭을 일구는 것 만큼 지극정성일 것 같다.

 

그러니까 내 이웃 땅의 한 사람은 본 적이 없고 다른 이는 농사가 주업인 것처럼 열중하는 모습이다. 아마도 농사를 짓지 않는 이는 매입 이후 농지법 위반상태일 것 같다. 물론 내가 농사를 짓고 있으니 현황상으로는 농사를 짓는 거와 다르지 않을 터. 본의 아니게 어떤 법 위반을 합법화시켜 주는 꼴이다. 물론 마을에는 외지인들이 소유한 땅들이 많기는 하다. 우리 동네는 대략 마흔가구지만 주소만 두고 살지 않는 집이 대략 열댓가구 가량 된다. 그들 중에는 마을에 부정기적으로나마 얼굴을 비추는 이들이 서넛, 나머지는 누가 주소를 두고 있는지 모른다.

 

이곳에 집을 짓고 정착한 초기 우리 집으로 여러해 동안 알 수 없는 우편물이 늘상 배달됐다. 그가 누군지 모른다. 분명 내 집 주소이고, 우편물의 이름도 명확한데, 주민등록상 우리 주소에 어떤 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우편물은 우리에게로 왔다. '하! 유령이…'. 우편물을 열어볼 것도 아니어서 집앞 왕벚나무 가지에 작은 바구니를 매달고 그속에 항상 넣어두었다. 언젠가 그 우편물들을 찾으러 오지 않을까 궁금해하면서. 그 사람은 내 주민등록상에도 없는 주소를 도용하는 건가.

 

여기 잣나무골 농지와 관련해 얼마 후에는 땅을 판 사람과 매입한 사람간에 커다란 분쟁이 발생해 한동안 소송이 벌어진 적도 있다. 누군가가 감옥에 가고 농지 관련 불법 혹은 편법적인 주제들이 이웃간에 한동안 설왕설래했다.

 

급기야 농지법 위반 혐의 하나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그냥 시끄러운 정도가 아니다. 그 한 단면, 이 땅 어느 곳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세상의 축소판을 여기서도 진저리나게 겪었다. 우리 체제의 근본인 '경자유전의 법칙'이 더이상 흔들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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