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주택업계의 골칫거리는 미분양이었다. 당시 10만가구에 이르던 미분양 물량은 지속적으로 증가,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던 2009년 최고 16만6000여가구에 달하기도 했다. 당시 준공후 미분양이 5만여가구로 현재의 7배에 이를 정도였다.
미분양 10만가구시대에는 시장에서 수요자들이 '왕'이었다. 그야말로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전세 역전의 참맛을 즐길 수 있었다. 건설사들은 차별화된 품질 개발에 여념이 없었고, 각종 원가절감, 기술 개발 등 혁신 바람이 시장을 변화시켰다. 수요에 맞게 중소형 공급이 늘어나 무주택서민들의 내집마련 기회는 넓어졌다. 중도금 무이자융자는 물론 각종 분양가 할인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민간주택공급량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매년 40만∼50만가구의 주택 공급은 여전했다.
지난해 11월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5만8027가구에 달한다. 이 중 전달에 발생한 물량이 1만여 가구에 이른다. 부동산 업계는 미분양 주택 규모가 조만간 6만가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한다. 이런 환경에서 새해 첫 분양시장은 한산하다. 수도권에서는 모델하우스 오픈 일정이 거의 나오지 않을 지경이다. 이달 첫째 주에는 전국 3곳·2164가구, 둘째 주 전국 6곳·2218가구, 설연휴를 앞둔 이번 주에는 전국 4곳·2020가구의 청약 접수가 이뤄질 뿐이다. 매달 몇 만 가구의 분양이 이뤄지던 것과는 판이하다. 건설사들도 분양시기를 저울질하는 등 시장이 최근 몇 년 동안과는 판이하게 움츠러들었다.
최근 정부는 '올 업무 추진계획'을 내놓고 서울 4개 자치구를 제외한 전 지역의 규제지역 해제 뿐만 아니라 대출, 전매제한 등의 규제까지 완화해 시장의 구원투수로 나섰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전매제한 완화, 분양가 상한제 주택 실거주 의무 등 규제 대부분이 폐지됐다. 여기에 더 충격적인 내용은 미분양주택 정부 매입이다. 윤석열대통령이 지시한 사항으로 이미 국토부 검토가 진행중이다. 이건 너무 한참 나간 내용이다. 현실적으로 미분양 주택을 매입할 기금은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전체 미분양 주택을 사들인다면 전체 기금 47조원 중 27조원 이상을 써야한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악성 재고'를 혈세로 감당하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는 셈이다.
주택도시기금은 국토교통부가 건설임대주택 매입 재원으로 사용하는 기금이다. 미분양 주택 매입에 이 기금이 쓰일 전망이다. 여기서 이게 맞느냐는 것이다. 사업자가 아니라 수요자들에게 쓰여져야 한다는 건 당연하다. 물론 미분양주택을 매입, 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제시되기는 하나 중장기적인 전략일 수는 없다. 주택도시기금을 한순간에 털어먹는거나 마찬가지다.
이에 앞서 건설사들의 물량 조절, 과도한 분양가의 인하, 품질 혁신 등 자구노력이 먼저다. 이를 통해 수요를 유인, 시장을 회복시키지 않고 그저 퍼주기식 기금 소진은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미분양 물량을 소화할 경우 수요자들은 여전히 고분양가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연초부터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명목으로 규제지역은 물론 전매제한, 실거주 의무, 중도금 대출 제한, 무순위 청약자격 등도 대거 폐지한 결과 고분양가 논란에도 불구하고 둔촌주공 살리기라는 비판이 넘친다. 미분양주택을 매입한다하더라도 문제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미분양이 많은 지방에는 사실상 임대수요가 있을 지도 따져봐야한다. 게다가 매입한 주택이 임대수요자에게도 적절한 지 알기 어렵다. 따라서 시장에 개입한 결과는 참혹할 수 있다. 좀더 신중한 논쟁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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