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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성의 전원에 산다] 좀 이른 월동준비

이규성 선임기자.

가을이다. 하지만 금새 지나갈 것 같다. 마당의 벗나무, 고로쇠나무, 느티나무는 진작 물들었고, 은행잎은 조금씩 물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가을색도 못 갖춘 채 푸르게 멍들 듯이 떨어질 지도 모를 일이다.

 

며칠전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졌다. 쌀쌀하다 못해 두툽하게 입어야 외출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나뭇잎에 단풍도 들기전에 추위가 먼저 왔다. 차창유리에는 두꺼운 성에가 끼어 한동안 고생스러웠다. 헌데 성에를 제거하며 '휴우'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최근 어느날 물이 안 나왔다. 한참 헤맨 끝에 상수도 모터의 휴즈가 고장난 걸 알았다. 모터를 고치는 김에 심야 전기보일러 순환펌프도 교체했다. 순환펌프는 심야 전기보일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밤새 가열된 온수를 배관을 통해 집안으로 순환시켜주기 때문에 절대 고장나서는 안될 부품이다. 올 봄 심야보일러가 좀 이상하기는 했다. 밤새 보일러의 물끓는 소리가 들리는데 집안은 전혀 따뜻해지질 않았다. 곧 날씨가 따뜻해져 여지껏 손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이번에 보일러까지 고치게 된 것이다.

 

졸지에 추워지고, 미리 물과 불을 손봤다는데 혼자서 썩소를 흘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흐흐흐 그거 참, 보일러 고치니까 추워지네. 역시 유비무환이야. 살다보니 모처럼 순조로운 날도 있구나. 내친 김에 월동채비도 해봐야겠다'.

 

그래서 이웃 농장에 전화를 걸었다. 농장주는 "다음달 중순경에 무우, 배추를 거둘텐데…." 그때쯤 배추 열포기, 무우 열개 정도를 예약했다. 때맞춰 이천에 사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친구는 전원어린이집을 운영하며 수백여평의 고구마밭, 열댓마지기의 농사도 병행한다. 그는 수확날, 품을 사듯 고구마도 나눠줄 겸 부른 것이다. 품삯은 고구마일터다. 아마도 한겨울은 날 정도는 될거다.

 

그것까지 마치자 온 겨울나기가 조금은 안온한 느낌이다. 아직 월동준비를 할 시간은 아니다. 그건 그저 계절을 따라 순환하듯 자연과 순응해가는 과정 중 하나다. 하지만 이르다. 단풍도 들고 낙엽도 지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그에 맞춰 겨울 맞이를 하면 된다. 꼭 겨울잠자는 곰마냥 미리 살을 찌우듯이….

 

그런데 겨울에도 식량이 풍부해 먹이활동이 필요 없으면 곰들도 겨울잠을 자지 않는다고 한다. 요즘엔 어릴적처럼 겨울채비를 하는 경우도 많지 않다. 유난히 겨울 채비를 하는 나를 보고는 아내도 이천 도예촌에 나가 항아리 세개를 사왔다. 우리 집에는 김치냉장고와 항아리 두개가 있다. 그래서 따로 항아리가 필요하지는 않다.

 

"웬 항아리?."

 

"된장, 고추장도 담고싶어져서. 왜 집집마다 장독대 있고 항아리도 많잖아. 그래서."

 

다시 날은 따뜻해졌다. 서두르는 우리가 어이없을 정도로, 당분간 가을날씨는 계속되리라. 하지만 틈틈이 겨울 채비하듯 시간에 순응해가는 삶이다. 문득 여유로운 듯, 자연스레 균형 있는 시간들이 지나고 있다. 문득 앞산이 서서히 물들고 있다. 곧 고구마를 캐러 친구네 가는 날이 기대된다. 함께 고구마를 깨며 한동안 얘기꽃을 피울 생각을 하니 벌써 정겹기 그지없다.

 

그는 몇해 전부터 벼르던 숲속의 오두막짓기를 마쳤다. 오래전에 연못을 만들고 나무를 심으며 미래의 집터를 가꾸던 모습이 선하다. 난 아직 그가 지은 새 집엘 가보지 못 했다. 아마도 단풍이 덮힌 날 오후엔 말년을 위해 그의 새 집에 가볼 듯 하다. 아늑한 집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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