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경기 분당신도시에 가면 일부 역세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노인들이 북적인다. 아예 역세권 일대 식당들도 노인층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곳이 많다. 그야말로 베드타운에서 실버타운으로 변해가고 있다. 저녁무렵 정자역, 서현역 일대에 젊은 층이 있기는 하나 예전보다 청장년 비중이 현격히 떨어졌다는 걸 실감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렇게 분당신도시가 변모한 지는 30여년만의 일이다. 30년, 즉 하나의 도시가 태어나 늙어가기까지의 생애주기는 그야말로 참담한 수준이다. 경주라는 도시가 천년동안 이룩된 것을 감안하면 일장춘몽 같은 사태다. 오늘날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1기 신도시 사업이 마무리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신도시 반성론이라는 광풍이 모든 지성을 압도했다. 당시 많은 학자와 언론이 일본 타마신도시를 모범으로 삼았다. 학자들마다 입에 거품물 듯 극찬을 내놓았다. 어떤 학자는 아예 찬양하는 모습도 보였다. 따라 배우지 못해 열등감에 휩싸인 것처럼 보였다. 그런 와중에 어느 봄날 나는 타마를 간 적 있다. 그곳은 도시를 순환하는 자기부상열차, 공원같은 주거단지, 건물간의 넓은 이격거리, 저층아파트들은 우리의 신도시와는 달랐다.
헌데 도시를 빠져나올 때쯤 '저걸 보고 학자들이 그토록 환장한 건가'하는 의구심을 지을 수 없었다. 그리고는 당시의 도시계획 관련학자들을 절대로 믿지 말자고 다짐했다. 내가 본 타마신도시는 한낮에도 사람들이 거의 없고 그나마 노인들 뿐이었다. 타마의 중심역마저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상가 지대에는 파친코 업소만이 성업중이었고 나머지는 줄줄이 서 있는 먼지 쓴 자판기뿐이었다. 그야말로 현대판 '고려장'터와 같았다. 아마도 학자들 중 대다수는 타마신도시에 와 보지도 않은게 분명했다. 오가는 사람이 없어 건물만 덩그러한, 썰렁하고도 음산할 정도였다. 간혹 베란다에 흩날리는 빨래들만이 사람의 흔적을 일러줬다.
지금 분당신도시는 타마신도시를 닮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을 수 없다. 바로 10년전 국토부장관은 "더 이상 신도시를 추가로 건설할 필요성이 없다"고 단언한 적 있다. 아마도 뉴타운 건설에 경도된 대통령때문인 듯 싶다. 게다가 바로 직전 정부에서 판교 등 2기 신도시 건설을 진행중이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의견은 지금 전혀 틀렸다. 얼마전 3기 신도시가 시작됐고, 현 정부는 재건축 활성화와 신도시 건설을 언급한 바 있다. 그리고 대대적인 물량 공급을 예고했다.
분당 등 1기 신도시는 늙어가고 있다. 아니다. 이미 늙었다. 도시 재생을 위해 리모델링 혹은 재건축 사이에서 갈팡질팡할 정도로 대수술이 필요하다. 신도시는 지난 1993년 분당·일산 등 제1기 5곳, 이후 성남 판교 등 제2기 12곳이 완료됐다. 그리고 지금은 제3기 신도시 5곳이 진행중이다. 열병처럼 번졌던 '신도시 반성론'과 그같은 어설픈 논쟁, 고민도 없이 또 신도시는 여전히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분당 등 1기 신도시에 사는 이들 중 젊은 층 상당수는 월세 혹은 전세민이다. 집값에 밀려 탈서울한 '전세난민'이다. 30여년전 처음 분당에 들어왔던 이들은 대부분 떠났다. 바로 대부분의 아파트들이 3∼4회 이상 거래된데서 알 수 있다. 분당 사람들은 지역우선공급 혜택을 받고 판교로 갔고 다른 이들은 광교, 동탄으로 옮겨갔다. 그 빈자리를 채운 이들이 노인과 젊은 세입자들이다. 현대판 고려장터로 변해가는 신도시, 그곳에 집 있는 이들은 인근의 또다른 신도시에 집을 더 가진 이들이 수두룩하다.
주택공급의 고도한 계산이 요구된다. 1기 신도시에 대한 용적률을 500%로 상향해 재건축을 진행한다면 그곳에 간신히 보금자리를 튼 젊은이들은 또 내쫓겨야 한다. 그리곤 살지도 않는 다주택자들의 배만 불려줄 건 뻔하다. 예전, 내집마련의 부푼 꿈을 이룬 도시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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