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충북 제천 의림지로 불렀다. 의림지는 1983년 겨울에 가본 적이 있다. 분지 한 가운데 큼직한 웅덩이 같았던 의림지는 예전과 달랐다. 사람도 많았다. 식당을 비롯한 편의시설들, 역사박물관, 산책로 등이 들어서 산보하기 좋았다. 산책로에 전시된 시들도 읊었다.
친구네와 우리 부부는 근처 식당에서 여느 관광객 처럼 산보하며 사진도 찍고, 더덕구이도 먹고 산비탈 카페에서 차도 마셨다. 그리고 잠시 후 그가 최근에 완성한 주말주택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해 친구부부는 주말주택용 택지를 찾아 여러 곳을 헤맸다. 수십 곳을 둘러본 끝에 기어이 다다른 곳이 제천땅 구불구불 깊은 산속이다. 그를 따라가는 동안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산길을 따라 도로변에서 10여㎞ 숲길을 달려서야 500고지에 달하는 그의 주말주택에 닿았다. 소싯적 차령산맥이나 대관령, 진고개를 넘었던 것과 다른, 깊음을 느꼈다. 고요한 새소리만 있을 법한 산중에 그의 주말주택은 아주 소박한 쉼터, 아늑했다. 그 집은 열평 남짓한 공간에 부엌과 화장실, 방 하나, 작은 포치로 이뤄진 농막이었다.
우리는 계곡과 폭포 등 주변을 산책하고 돌아와 데크에 앉아 얘기를 나눴다. 작정하고 나눈 얘기는 아니지만 주로 자식들과 노후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 부부는 30여년을 교사로 살았다. 그의 아내는 언젠가부터 늘그막에 물러나 앉는 것을 내비치곤 했었다. 그 농막이 바로 그들의 작은 소망으로 코로나 와중에서도 인생2막을 향한 발길이라고나 할까.
나야 오래전부터 전원에서 도시를 오가며 살아서 탈도시를 생각하기에는 어색하다. 그러나 친구의 주말주택은 온전히 이해가 된다. 학교에서 코로나와 싸우며 입시지도를 하느라 당연히 지칠 법도 할 터. 주말쯤은 숲에 들어야하겠다는 심정을 알만 했다.
특히 교사인 그의 아내가 이곳을 몹시 반색했다. 어느날 우연히 드라이브 중 숲길에 이끌려 찾아들었다가 사로잡힌 건 그녀였다. 그럴만도 했다. 특히나 집을 감싸듯이 휘감는 앞산 풍광은 잡힐 듯 아스라했다. 그러면서도 '3년 잘 버텨야할텐데'. 친구는 말했다. 교사들의 정년은 62세, 남은 시간 무사히 마무리하고 싶다고. 우리에게 닥친 베이버부머의 말년이라니. 명백하게도 지금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채 노년이 다가왔다. 그러나 노년의 쉼터를 마련한 그의 성취감, 말하자면 자신에게 휴식을 줘도 되지 않느냐는 위로같았다. 그 농막말이다.
세상은 우리가 하는 말을 듣지 않는다. 우리의 생각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나날이 위기속이고, 때로는 옥죄고 억압하는 일뿐이다. 우리 베이비부머들. 그러니 매사 폭력같다. 출근길, 지하철역 출구를 향해 줄달음치는 발자욱소리에 더욱 쫒기는 것처럼…. 그 정치의 서글픔때문일까. 의림지 산보를 핑계삼아 산중으로 나를 불러낸 친구의 뜻을 알 것 같았다. 젊었을 적 나는 늙어가는 모습을 그려본 적이 없다. 누구나 처럼 여유가 없었다. 사실 상상하고 고민하고 무언가 행동했어야하는데.
몇번 고향에서 텃밭을 일구는 상상을 해본 적은 있다. 젊어서 지은 잣나무골 회색 목조집이 마지막 거처일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할 지는 정하지 못 했다. 코로나가 끝난다고 끝난게 아니다. 코로나가 와도, 끝나도 끝났다고 이익을 챙기려는 그들의 정치적 셈법이 여기서도 한걸음 더 떠미는 세상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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