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마을이 분주해졌다. 우선 마을 회관에 노인들이 돌아왔다. 거리두기가 풀리면서 주민들의 왕래도 잦아진 것 같다. 아직 마을회합을 갖지는 않지만 분명 달라진 분위기는 역력하다. 이는 늦은 오후 노인정을 떠나는 할머니들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엿보이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밭에서도 품앗이하는 모습이 눈에 띤다. 작년 이맘때 코로나의 한복판에서 신음했던 걸 생각하면 달라진 게 확실하다.
'뭐지 ? 이 이상한 기운은'. 요즘 곳곳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공기가 감지된 것은 지난 산책길에서다. 마을 초입에 올해 새 이장과 총무가 연임됐음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보였다. 플래카드가 걸리기 며칠 전, 문자로 찬반을 묻는 공지가 날라오더니 곧 연임 확정을 알려준 거다. 그리고 그 플래카드 밑에 또다른 현수막 두개가 내걸렸다. 마을 지원금과 관련, 사업 안건을 묻는 내용과 수목장(樹木葬) 설치 반대를 적은 현수막이다.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마을사업으로 수익사업, 마을 공원조성, 창고 건립 등 우선 순위를 정하자는 안건도 예전과 다른 모습이다.
수목장과 관련해선 아주 큰 충돌을 예감하게 만든다. 곧 한판 붙을 듯 하다. 몇해전 절골에 절이 세워졌다. 규모는 작으나 마당에 탑, 불상이 놓여지고 대웅전과 요사채 하나가 자리했다. 그리고는 그 절에서 '이후락별장' 앞 야산 1만여 평을 사들인 뒤 수목장터를 조성, 운영했다. 실제 얼마전 장의버스 한대가 마을로 들어오면서 주민과 충돌이 벌어졌다. 충돌 이후 절에서는 수목장사업을 확대해 나갔다. 이에 주민들은 마을이 장송곡에 휩싸일 것이라고 반대하는 입장이다. 결국 본격적인 싸움이 벌어지기 직전이다. 이 또한 마을에 불어닥친 새 기운이다.
또다른 기운은 잣나무골로 오르는 언덕길 수백평 짜리 밭 몇개가 주말농장으로 변신, 도시민들의 발길이 잦아진 것이다. 밭에서는 십여평 단위로 나뉘어진 구간마다 명패가 꽂히고 각 구간마다 상추, 아욱, 파 등 모종이 이뤄졌다. 주말 오전 땅을 분양받는 도시민들이 몰려 활기찬 동네 모습이라니. 주말농장은 우리마을에서 없었던 일이다. 주민들이 농협에 농장 운영을 신청하고, 농협이 도시민을 모아준 것이다. 100여개도 넘는 주말농장 구좌가 다 채워져 밭떼기는 명패가 가득하다.
딸기농장에서도 비닐하우스 바깥에 커다란 현수막을 내걸었다. 견학 및 체험활동 등을 알리는 현수막으로 벌써 여름을 부르는 듯 하다. 마을 곳곳에서 완연히 달라진 모습에 봄이 훌쩍 밀려나는 듯 싶을 지경이다. 잣나무골 아래 한낮에는 여름같은 기온이 느껴지기도 할 정도로 햇살도 뜨거워졌다. 한편에선 새 바람이 일어나고 다른 편에서는 충돌이 벌어지고. 예전과 다른 기운이 갑자기 용솟음친 듯 이미 마을은 분주하다. 그래서 코로나 이후 대반격이 시작됐다고나 할까. 마을사람과의 접촉 없이도 달라지는 느낌을 감지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 중에서도 수목장과는 이미 전초전을 끝내고 대회전을 펼치기 직전이다. 몇해전 철탑싸움으로 홍역을 치룬 적 있는 마을사람들에게는 트라우마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전혀 다른 상대와 부딪친다는게 여간 곤혹스럽지 않은 상황이다.
주말농장이나 딸기농장에 도시민들이 들어오는 것은 환영 일색이다. 두 곳은 모두 아이들의 체험을 콘텐츠로 삼고 있다. 반면 수목장은 정반대다. 코로나 이후 낯설면서도 다른 새바람 앞에 주민들은 더욱 분주한 삶과 마주치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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