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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이규성의 전원에 산다] 과수원으로 변한 텃밭

이규성 선임기자.

벗나무의 꽃이 지고 잎이 피기 시작했다. 그새 밭에 심은 과일나무의 잎도 나왔다. 참 다행이다. 지난달 말 텃밭에 과수 10여그루를 심었다. 밭에 나무를 심은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 집에는 괴상한 텃밭 하나가 있다. 그저 우리 마당에 붙어 있어 한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지번에 전혀 다른 맹지로 다른 이의 땅이다. 그 땅에 도로 개설이 불가능해 내가 그저 밭으로 일궈 왔다. 주인은 누구인지 모른다. 지난 20여년 동안 주인이라고 나타난 사람은 없다. 분명 아내한테 집을 지을 당시 땅주인이라며 땅을 살피던 이가 있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은 있다.

 

중년을 넘어선 그는 변호사이고 머지 않아 집을 지을거라고 했다. 그리곤 지금껏 그를 본 적이 없다. 그새 다른 이에게 땅을 매각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는 나타나지 않은 지 오래다. 그가 나타나지 않는 동안 그 땅 앞에 내가 집을 지었고 내 집과 연접해 또 다른 변호사가 집을 지었다. 그래서 그 땅으로 들어가는 길은 없다. 집을 짓기 위해서는 내 땅 혹은 앞집의 승락을 구해야 도로를 개설할 수 있게 됐다. 그건 우리도 모르는 새 본래 땅주인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런 문제가 생겼는데도 그는 나타나지 않는다.

 

아무튼 이곳에 자리잡고부터 그 맹지를 텃밭으로 쓰고 있다. 버려둘 수도 없고…. 한동안 텃밭 일구는 재미에 빠져 상추, 아욱, 통, 고구마, 들깨, 부추, 오이 등 10여가지 이상 채소를 심었다. 텃밭 일구는 재미란, 어느 핸가 한 친구는 내 텃밭을 보고는 '아열대 식물을 키운거냐'며 너털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텃밭이 자리잡고서는 우리 집도 마당과 텃밭이 균형잡혀 보이고 어엿한 그림도 그려졌다.

 

그리고 한가지 버릇이 생겼다. 그 버릇은 출근 전 마당과 텃밭을 한바퀴 둘러보고서야 집을 나선다는 것이다. 텃밭을 살피지 않으면 하루 종일 뭔가 허전한 느낌을 지을 수 없었다. 날마다 훌쩍 자라고 있는 식물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위안을 받기도 했다. 하루에 한뼘은 자란 것 같은 상추, 주렁주렁 빨갛게 익어가는 토마토, 탐스런 고추…. 하여간 텃밭에서 받는 충족감, 그걸로 아침 출근길이 싱그러웠다. 주말이면 채소 가득한 밥상, 친구들과 나누는 삼겹살 파티 등 여러가지 추억이 만들어졌다.

 

그런 텃밭을 올해부터는 과일나무로 채웠다. 그리고 밭 가장가리에는 측백나무 몇그루도 심었다. 몇 년 전 교통사고 이후 그 후유증에 온전히 텃밭을 일구질 못 한다. 풀이 무성한 밭퉤기에 제대로 자라지도 못한 채소들, 그걸 본다는 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풀더미 속에서도 잘 자라는 것들이 있다. 취나물이나 부추 등은 달리 가꾸지 않아도 봄마다 피어난다. 돌나물도 그렇다. 두릅이나 오가피 순, 민들레, 고들빼기 등도 거저 먹을 수 있다. 쑥이며 냉이는 또 어떤가. 그래서 아내와 상의끝에 텃밭에서 나는 채소 수확을 전면 재편하기로 했다. 우선 텃밭에 과일나무를 심고 감자, 오이, 토마토, 고추 등의 작물은 마을 농장에서 조달하기로 했다. 대신 자연에서 채집한 나물을 주로 이용하기로 심은 게 과수들이다.

 

그렇게 심은 과수들이 무사히 뿌리내렸다. 앵두, 매실나무는 꽃을 피웠다 지고 이제는 잎을 피우고 있다. 사과나무와 배나무는 솜털 가득한 잎을 튀웠다. 채리나무도 그렇고, 다들 내 텃밭에 와서 뿌리내리기 시작한 것. 나무 한그루 죽이지 않고 무사히 텃밭을 리모델링한 것을 확인하고서야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다른이의 땅일 망정 내손으로 심은 너희들, 잘 자라다오. 비록 주인이 나타나 내가 돌보지 못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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