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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이규성의 전원에 산다] 내가 사는 곳의 봄

이규성 선임기자.

4월이다. 초록이 깨어났다. 하지만 잣나무골은 북향이어서 서울보다 봄이 며칠 늦게 찾아온다. 한동네에서도 남향인 맞은편이 봄색에 물들고 나서야 아지랑이가 비틀대며 잣나무골 언덕길을 기어 오른다. 햇빛 받는 차이가 그토록 다르다.

 

이곳에서 살면서 봄 벗꽃이 북상하는 속도는 하루 100㎞쯤 되고 가을녁 단풍이 남하하는 속도는 하루 50㎞ 가량 된다는 걸 알았다. 물론 정확하진 않다. 대략 그렇다. 진해 벗꽃이 개화하면 닷새 후 여의도 윤증로도 벗꽃이 피기 시작한다.

 

잣나무골은 같은 위도인데도 여의도보다 닷새 가량 벗꽃이 늦게 핀다. 아마도 그때쯤 벗꽃은 북한 땅 함경도나 평안도 신의주쯤 도달했을거다. 그러니 북녘땅에 사는 것과 같다. 지금 우리 마당의 벗꽃은 꽃망울을 튀웠을뿐 아직 터트릴 기색은 아니다. 아마도 꽃을 보려면 닷새는 지나야할 듯 하다.

 

군입대하던 때, 진해로 가던 중 대구쯤에 이르러 (지금은 산들이 푸르지만 당시는) 민둥산마다 진달래가 붉게 물든 걸 보고 새삼 봄임을 실감했다. 그건 아주 낯선 감정이었다. 여러번 봄을 보냈음에도 그전까지 내게 봄은 그저 그런 계절이었다. 새삼스럽지도 않고 유별나지도 않아 기억되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때는 민둥산의 진달래꽃들은 왜 그리 붉던지. 군에 가는 마음을 진달래는 더욱 처연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오후 무렵 진해에 도착해서는 도시 전체가 연분홍 벗꽃밭인 걸 보고 또 놀랐다. 게다가 군항제 마지막날 휴일 거리에는 발 디딜 틈 없이 몰려든 사람들의 인파에 전율했다. 거기서 또 꽃을 보러 사람들이 몰린다는 사실에 경탄스러웠다. 바람결에 꽃잎이 눈송이처럼 흩날리는 광경은 감동스럽기도 했다. 그 분분했던 낙화! 나를 배웅하러온 친구와 벗꽃길을 따라 해변까지 인파속을 거닐었다. 그리고 짜장면 한그릇을 나누고 훈련소로 들어갔었다.

 

진달래와 벗꽃은 잣나무골에 들어와서 마당에 처음 심은 나무다. 마당 초입에 벗꽃과 진달래를 나란히 심으며 내 마당도 숲속같기를 바랬다. 그 나무를 심은 후 이웃집 아저씨와 나는 이천, 여주 등 여기저기로 꽃구경 다녔다. 이천에 산수유축제가 열릴 땐 흥겨운 잔칫판 같았다. 사람들은 가족들의 손을 잡고 맘껏 봄날을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내친 김에 아내와 아이 손을 잡고 남한강가를 산보하러 나서기도 했다. 그리고 산수유 두어그루를 마당에 심었다. 산수유를 심으며 '아이들이랑 함께 커 가라. 그리고 어른이 됐을 때 그 나무와 함께 자란 모습을 꼭 기억하길….' 염원도 심었다.

 

그렇게 나무 몇 그루와 염원 하나를 땅에 심고 나서 불현듯 고향마을에 가서 소나무를 가져다 심어야겠다는 생각에 들었다. 고향집 뒷산에서 가져온 소나무 다섯 그루는 세그루가 살아 있다. 내손으로 심어서일까. 그동안 마당의 나무들에게 말을 거는 버릇이 생겼다. '잘 잤니 ?' 혹은 '태풍 불어서 힘들었지 ?' 등. 폭설이 내린 겨울 어느 날 아침 창문 너머 땅바닥까지 휘어져 있는 소나무가지를 보고는 '저걸 어째! 제발 부러지지 말거라'하는 순간 '푸르르'하고 화들짝 눈더미를 스스로 털어내는 것을 보고 감탄에 마지 않은 적도 있다.

 

지금 소나무들은 굵직하게 자라 지붕을 넘어섰고 초여름 샛노란 송화가루를 흩날린다. 그때마다 솔향 가득한 마당에서 햇빛, 바람에 취하는 느낌은 무엇에도 비할 바가 없다. 바램대로 벗꽃은 아주 울창하고 의젓한 나무가 됐고, 마당의 풍경을 늘상 새롭게 변화시켜주고 있다. 소나무도 마당 한켠을 차지하고 있어 봄이 더욱 푸근하기만 하다. 지금 그 나무들이 자라나던 걸 아이들은 맘속에 담아두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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