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거리에 나갔다가 오랫만에 어떤 아줌마 한분을 봤다. 아줌마는 5년전에 생긴 마트를 들러 막 집으로 가려는 참이었다. '마트에는 일본 식자재가 없는 걸로 아는데, 그새 일본 식품이 새로 들어왔나. 하여간 세월에 장사 없구나'. 그녀의 얼굴에도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다.
그녀를 처음 봤을때는 20여년 전, 월드컵이 열리던 때 초등학교 운동장에서였다. 그 날 운동장에는 스크린이 펼쳐지고 멍석도 깔렸다. 중고등학생들은 잠실로 거리 응원을 나가고 청년 몇은 양평 고수부지로 떠나 운동장에는 주로 노년층과 주부들, 어린 아이들로 가득했다. 운동장 한편에서는 마을 부녀회가 장만한 삼겹살 구이, 순대국밥 등이 차려져 진칫날 같았다. 응원전에 동원된 풍물패 소리도 특별히 흥겨움을 더 했다.
축구 관람에 한참 빠져 있을 때 한 아줌마가 우리 앞에 순대 한 접시를 가져다 놓아줬다. 그러자 옆에 있는 마을 형님이 말했다. "일본 여자인데 내 친구랑 결혼해 학교 뒷편에 사는 분이야." 당시 나는 한국사람과 결혼한 일본 여자는 본 적도 들은 적이 없어 심하게 놀랐다. 중국 조선족이나 베트남 여성들과 결혼하는 농촌총각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아무튼 가난한 나라에서 온 결혼 이주는 아닐테고…. 우리 아주머니들과 전혀 구별이 안 되는 것도 신기했다. '일본은 잘 사는 나라라는데 여기까지 어떻게 왔을까?' 몹시 궁금한 게 많았다. 하지만 응원에 미쳐 더 이상 의문을 이어가지 못했다.
다만 그 때 덧니가 보이던 그 아줌마는 똑똑히 기억한다. 하도 의아해서 말이다. 그게 끝이다. 인사 한 번 나눠본 적 없는, 그런 아줌마를 다시 본 것이다. 그렇다고 이후에도 인사를 나눈 적도 본 적도 없다. 그저 그때 운동장에서 한 번 봤다는 것이고, 그녀 또한 나를 기억할 리 없다. 헌데 여전히 이곳에서 잘 살아가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은 들었다.
그건 아무런 스토리가 없는 얘기였다. 다만 다문화속에 '한국남자+일본여자' 조합이 없던 나로서는 아주 진한 인상만 남았을 뿐이다. 아시아마트도 별다른 내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름만 마트지 작은 구멍가게에 지나지 않는다. 생긴지도 7, 8년 됐다. 그렇다고 아시아마트에 일본제품이 들어오기는 한 건가 들어가볼 일도 아니었다. 다만 안거리나 곤지암 시내를 활보하던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코로나 시국에 모두 떠나 요즘 마트는 썰렁했다.
'그래도 일본 아줌마는 남았네.' 하지만 그 속에 전혀 변하지 않은 내 의식이 존재한다는 걸 발견했다. 월드컵 이후 우리나라는 다문화사회라는 말이 휩쓸었다. 게다가 무슨 사회운동인양 지자체마다 각종 다문화 프로그램들이 생기고 TV에서도 외국인들이 고정 출연하는 일이 빈번했다. 우리에게도 단일민족이라는 인식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어떤 이들은 다문화가정, 다문화사회, 다문화라는 말을 쓰지 말자고 했다. 그게 문화적 차이를 설명한 용어는 아니며 본질적으로는 혈통 따지는, 저급한 말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다문화라는 용어가 오히려 차별을 깔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어릴 적 '튀기'니 '짬뽕'이니 하던 말의 변종이 '다문화'다. 지금 우리나라엔 100만명이 넘는 외국인이 섞여 살고 있다. 결혼 혹은 노동 등 여러 이유로 우리와 함께 살아야 하는 이들이다. 즉, 다문화라는 용어는 이들과 우리 한족(韓族) 사이의 구분을 칭하는 말처럼 들린다. 여전히 외국인에 선입견을 버리지 못한 내가 오늘따라 한심하게 여겨질 뿐이다.
이제 다문화라고 칭하는 이들은 우리 사회, 정치, 문화예술에까지 스며들어 다양한 소통, 연결을 이뤄가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 일본 아줌마에게 놀라고 있으니. 곧 코로나가 끝나면 여기도 외국인 노동자가 돌아올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쥬신계열의 예맥족으로 산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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