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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성의 전원에 산다] 봄이 왜 이리 더디지?

이규성 선임기자.

작년 이맘때 봄날 같았다. 텃밭에 냉이도 나고 철쭉과 산수유가 움 텃었다. 그래서 뉴스 속 온난화를 걱정하며 왠지 모를 죄의식에 사로잡힐 지경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작년과 달리 영하 10도를 오르내릴 만큼 맹추위가 이어지고 있다.

 

북서향을 이루는 잣나무골은 여전히 잔설이 남아 있고 맞은 편 절골엔 겨울 햇살이 번져 있다. 마냥 따뜻할 것만 같다. 햇살만으로도 아랫동네가 부럽기조차 하다. 월동준비하던 게 아득하고 봄은 감감할 지경이니…. 해마다 이맘때 늘상 한 번쯤 쓰던 말이 있다. '춘래불사춘'이다. 봄 같지 않은 봄! 난 그게 싫다.

 

며칠전 새벽녘 경강선 곤지암역에서 전철을 탔다. 내가 타는 칸은 여섯량 중 맨 뒤편이다. 이매역에서 분당선으로 환승할 때 최단 거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칸에는 여분의 자리가 있어서다. 그날도 나는 맨 뒤칸에 올랐다. 마침 몇 자리가 남아 있다. 느긋하게 자리를 잡고 휴대폰을 꺼낸 다음 주위를 둘러보자 온통 검은 색이다. 한결같이 검은 패딩을 장착한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조는 듯한, 마치 무덤처럼 고요했다. 침묵과 검은 옷들. 우리가 언제부터 흑의민족으로 변신한거야.

 

어떤 데자뷰가 머리를 짓눌렀다. 8~9년 전 어느날 출근길 새벽 전철에 올랐을 때 모든 이들이 검은 옷을 입고 있어 놀랐던 그 광경이다. 그 때 나는 '불경기라서 그런 건가'라고 생각했었다. 지금 코로나19로 지친 사람들이 여전히 검은 옷을 벗지 못한 걸까?

 

그 때와 다른 건 있다. 예전 전철에서는 청소부 아줌마나 아파트 경비원 처럼 보이는 이들이 많았다. 일부는 퇴근하는 것 같았고 일부는 출근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엔 직장인 같은 청장년이 대부분이다. 모두들 출근하는 분위기다. 같은 것은 모두 푸대같은 겉옷을 뒤덮고 조는 듯한 행색들이라는 거다.

 

이 우울한 풍경, 마치 십여년을 두고 반복되는 듯한 모습을 봄이 오는 길목에서 또다시 마주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왜 모두 검은 옷을 입는거지 ?' 난 내가 목격한 풍경에 답을 할 자신은 없다. 다만 힘든 세상이 그렇게 나타났을 거라는 짐작은 해본다.

 

어느 사회학자라도 속시원한 답을 내려주면 좋겠다. 간혹 흰색이나 붉은 색 혹은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사람도 있어야하는 거 아닌가. 대개 이 나라엔 겨울이면 대체로 두세가지 색의 옷을 입는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 대체로 옷 색깔이 비슷비슷하다. 심지어 흰색이나 청색도 도드라질 정도로 눈에 띨 정도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옷 걸이를 살펴봤다. 파카 둘, 반코트 하나, 패딩 둘 그게 겨울 웃의 전부다. 반 코트만 고등색과 검정색의 중간쯤이고 나머지는 모두 검거나 거무스레하다. 반코트는 이번 겨우내 한 번 입었다. 친구 딸 결혼식날, 좀 단정하려고 선택했을 뿐 회색 버버리는 몇 년째 옷장 밖을 나온 적이 없다. 30여년전 버버리 열풍이 불었고 나도 하나쯤 가져야할 듯한 기분에 결혼 이듬해 장만했었다.

 

한번은 아들녀석이 패딩 하나를 사준 적 있다. 그래서 패딩이 두개가 됐다. 패션에 둔감한 나는 극구 다음부터는 옷은 사주지 말라고 당부했었다. 녀석은 반색하지 않는 내게 뾰로퉁한 채 투덜거렸다. '뭐 기분 좋아하면 안 돼!' 그런 녀석에게 '요즘 옷은 수 십 년씩 입을 수 있으니 너한테 다 물려줄게'라고 응수했다. 녀석은 질겁했다. '우린 아빠랑 달라'.

 

그리고 생각한다. 날 풀려 검은 옷들을 모두 벗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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