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전 우리 마을 인근에서 보신탕집이 사라졌다. 그 전에 천덕봉 아래 개농장이 사라지고 곤지암읍내의 보신탕집이 사라졌다. 양평 오일장내 천막식당에서 보신탕 메뉴도 사라졌다. 그보다 앞서 성남 모란장의 개고기 전문거리가 사라진 이후 보신탕집은 하나둘 소멸의 길로 가고 있다. 대신 그 자리에 반려 혹은 생명존중이라는 의식이 자리잡았다.
서울 아시안게임이 열리던 해(1986년) 군에서 막 제대하고 사회로 복귀했을 때 개고기 논쟁이 시끄러웠다. 우리에겐 전혀 생소한 논쟁에 외국의 전설적인 여배우마저 가세했다. 그 와중에 아파트에서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애완견과 함께 외출하는 사람도 보였다. 당시 개를 품에 안은 모습이란 내게 충격이고 낯설음이었다. '개가 인간을 반려한다고?'. 참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감정이었다. 올림픽, 월드컵 이후 논쟁은 식을 줄 몰랐다.
그전까지 우람하고 튼실해야만 개다운 줄 알았다. 개한테 미용을 해주고 목욕도 시켜주고 병원에도 데려 가야할 존재란 상상은 해본적이 없다. '먹이로 우유나 고기도 준다고? 사람도 못 먹는데'. 그만큼 세상은 변했다. 아예 개에 대한 미학적 관점마저 깨졌다. '내가 알던 멋진 개는 멋진 게 아니야'.
몇해전 서울 강동에서 친구와 보신탕을 먹은 생각이 난다. 그날 우리는 한 번도 키워본 적 없는 반려견에 대해 얘기하며 최후의 만찬을 가졌다. 그리곤 보신탕 한그릇을 포장해 '어머니 드리라'고 그에게 들려줬다. 후일 그의 어머니 또한 "이게 마지막이겠구나"하셨단다. 우린 그렇게 어렵사리 자의반 타의반 세상 물결에 밀리 듯 개고기와 이별했다. 이걸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숱한 개고기 논쟁 속에 주도적인 참여자는 되지 못한 셈이다. 그 결과 식용이라는 혐의에 휩싸여 세상이 변하는 걸 뒤늦게 알아챘다고나 할까.
지금 인근 보신탕집자리엔 카페가 들어섰다. 그 옆의 산채나물집은 수도권내에서도 체인점이 여럿 생길 만큼 유명한 보리밥집 브랜드가 됐다. 또 소고기식당도 생겼다. 경천동지한거다. 성남 모란시장에서 개고기 거리가 없어진다고 할 때 수도권 경동지역은 물론 곤지암 일대 개사육장들 마저 야단법석였다. 당시 성남시장은 지금 대통령 선거에 나섰다. 하여튼 모란시장 개고기 거리는 식당가로 말끔히 바뀌었고 오일장도 새롭게 정비됐다. 아직까지 모란장을 이용하던 수도권 경동지역 주민들은 장날 바뀐 풍경이 실감난다고 이구동성이다. 성남시장이 모란상인들을 어떻게 설득했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 한다. 다만 큰 잡음 없이 수행한 건 주민들 반응을 보면 대충 알 것 같다.
청계천이 정비될 무렵 서울시 출입기자로, 청계천변에 위치한 신문사에 근무했었다. 게다가 건설부동산 담당으로 공사현장은 물론 청계천 상인들이 송파 '가든파이브'로 옮겨가는 모습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삽질'속에 숨겨진 이데올로기도….
지금 어떤 물결이 우리를 또다른 곳으로 밀어내고 있다. 그게 변화든 혁신이든 바뀌어야 할 판이다. 그 중의 하나가 젠더논란이다. 가만히 보면 세상의 변화를 막고 있는 측과 변화를 이끌고 있는 측이 극렬하게 맞붙어 있다. 논란이 끝날때쯤 세상은 또 달라져 있을게 분명하다.더불어 비정규직, 소득 격차, 지역 불균형 등 수많은 논쟁은 점입가경으로 변화했다. 다만 그 변화가 투쟁이든 타협이든 자연스럽게 치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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