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기 전이다. 주말 아침, 공기는 칙칙하고도 싸늘하다. 이런 시간에 생전 처음으로 황당한 일을 목격하고는 크게 놀랐다. 우선 휴대폰 속 카메라를 열어 증거를 확보하는 일부터 했다. 습관처럼, 그리고는 상황을 지켜봤다.
두어번 잣나무골 고양이에 대해 얘기한 적 있다. 오늘도 그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다. 따라서 고양이는 본의 아니게 내 얘기의 액스트라 중 조연급 정도로 커진 셈이다. 매번 나 혼자 1인극으로 구성하기 어렵던 차에 고양이가 훅 들어온 것이다. 잣나무골에는 여러 마리의 숲냥이들이 있다. 이 숫자는 10여년째 그대로다. 급격히 불어날 만도 한데 어떻게 조절되는 지는 모르겠다. 그 어떤 천적? 나?
일단 놀란 사정은 이렇다. 텃밭 가장자리 쥐밤나무에 고양이가 올라가 있던 것이다. 화들짝 안 놀랄 수가 없다. 여지껏 한 번도 본적도 들은 적 없는 일이니 왜 안 그렇겠는가. '고양이가 나무를 타?', '누구 본 사람 있어?'. 일단 증거를 포착하고, 다음 질문을 시작했다. 고양이는 쥐밤나무 중간쯤 가지가 뻗은 자리에서 아예 똬리를 틀고 내려올 기색이 없었다. 나무를 살펴보니 꼭대기에 대롱대롱 매달리시피 떨고 있는 청설모 한마리가 눈에 들어 왔다. '숲냥이 너 요즘 사냥 안하잖니?' 고양이는 길목을 지키고 장기전 태세다. 아마도 고양이는 청설모를 가지고 놀려고 그러는 모양이다. 요즘 간혹 사냥 놀이를 하기는 하지만 먹지는 않는다.
잠시 후 고양이가 한눈 팔기를 엿보던 청설모는 제 키보다 백배나 더 되는 나무 아래로 점프한 후 숲으로 사라졌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고양이는 한참동안 넋 놓고 그 자리에 얼어 붙어버렸다. 한시간이 지나도록 내려올 기색이 없다. 나는 고양이가 내려오는 방법을 몰라 그러는 줄 알았다. 그래서 막대기를 가지고 나무로 다가갔다. 내가 다가서자 고양이도 몸을 날려 달아났다. '훗 괜한 걱정을!' 어이가 없다. '너무 어줍잖네, 아침부터 별 일이야'하면서도 그 잔상이 오랫동안 남았다. 그리고는 고양이가 나무 타는 걸 왜 처음 봤을까. 생각해 보면 놀랄 일도 아니고 고양이가 나무에 못 오를 일도 아니었다. 단지 그런 광경을 보지 못 했을 따름이다.
청설모들은 내가 잣나무골에 정착하던 당시 순식간에 산을 점령한 족속이다. 당시 우리나라 산의 소나무들은 솔잎혹파리로 전멸하던 시기다. 그전까지 대한민국은 전 국토가 소나무밭과 같았다. 소나무들이 솔잎혹파리를 견디고 조금씩 깨어나던 시절 청설모들이 숲의 다람쥐를 작살내고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들고양이들이 번성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숲이 잡목으로 뒤덮이고, 남방의 식생이 조금씩 지구 온난화로 북상하고 있는 양상이다. 이런 생태계 순환의 한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잣나무골에 도시생활자들이 정착하고 나서 들고양이들은 사냥하지 않는다. 잣나무골 사람들이 주는 먹이 때문이다. 지금 서울 등 도시에도 쥐들이 사라졌다고 한다. 사실 얼마전까지 도시 골목마다 쥐들이 횡행했다. 간혹 뉴욕이나 파리 등 선진국 대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쥐가 없는 서울에 놀란다고들 한다. 대신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들에게 또 놀란다나 뭐라나. 하여간 잣나무골에서는 고양이와 청설모간의 대치가 팽팽한 상황이다. 막 균형이 깨질지 간당간당하다. 그러다가 소나무들이 솔잎혹파리를 이겨냈듯이 다람쥐들이 돌아올 지도 알 수는 없다.
아무튼 숲이 변했다. 놀이감으로 청설모를 잡는 고양이들, 활엽수로 바뀐 숲, 이제 나는 또 못 보던 풍경을 보게 될 판이다. 순환의 한 가운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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