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쯤이면 마음을 사로잡는게 두가지 있다. 귀뚜라미 소리와 인근 마을 축제다. 그 두가지에 잠시 마음을 홀리고 나서야 겨울로 들어간다. 요즘 귀뚜라미 소리가 잦아졌다. '뻐꾸기 소리가 숲을 더욱 깊게 한다'는 황지우의 시 처럼, 새벽녁 귀뚜라미 소리가 집안을 더욱 고요하게 한다. 아예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보다 어둠을 타고 흐르는 귀뚜라미 소리가 집안을 더 고요하게 하다.
귀뚜라미가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문이 열렸을 때 들어왔는 지 가을이 깊어져 극성이다. 귀뚜라미가 무섭다고 울상인 어린 딸을 달래느라 애를 먹었던 게 기억난다. "추워서 들어왔나? 우리 집이 좋은가보다. 쟤들도 살러온거야." 그렇게 딸을 달래 집안의 귀뚜라미를 받아들여 가족으로 삼았다. 애초에 이곳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낳고 자라고 죽어갔을 귀뚜라미다. 실상 그들은 가을의 전령사들이라기보다 겨울의 전령사다. 귀뚜라미 소리는 월동채비를 하라는 전언이다.
도시와 달리 여기서는 월동채비라는게 그저 하루 이틀만에 이뤄지지 않는다. 단열과 보일러 점검, 김장 등 주변을 살피고 추위를 막는 일들을 하는데 한달 가량 걸린다. 그걸 마칠 즈음 귀뚜라미도 사라진다. 그러므로 내겐 귀뚜라미가 겨울의 전령사인 셈이다. 그렇긴 해도 난 귀뚜라미 소리엔 둔감한 편이다. 우는지 안 우는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간혹 친구들 중에는 밤새 귀뚜라미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푸념하는 경우도 있다. 그 말을 듣고서야 귀기울여보면 데시벨이 은근히 높다는 걸 알게 된다. 참으로 희안한 노릇이다.
반면 나는 한밤중에 일어나는 소리를 확연히 느끼곤 한다. 특히 차소리가 그렇다. 새벽녁 늦게 들어오는 이웃집 차소리는 잠결에서도 분명하게 느낀다. 차량마다 소리가 달라 누구네 집이 늦게 들어오는지도 구분할 지경이다. 경차, 중형차, SUV 등 이웃들이 타는 차들이 달라 우리 집 위 언덕길을 오르는 차소리는 모두 차이가 있다. 그렇게 귀가 다르게 열려 있다. 인공적인 소리는 확연하면서도 자연의 소리에는 무딘 내 감각을 선뜻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아쉽게도 가을마다 이곳에서 치루는 연례행사가 올해는 건너 뛰었다. 지난해와 더불어 2년째 사라졌다. 바로 코로나 때문이다. 그 연례행사는 바로 옆동네에서 진행하는 '품실제'라는 지역축제다. 인근 경기도 여주 산북면에서 10월 마지막주 품실제가 열린다. 그날 마을 주민들은 산촌마을에서 나는 마을 상품들을 내놓고 한바탕 잔치를 펼친다. 이곳은 양자산자락에 걸쳐 있어 버섯, 산채 등 산나물과 치커리를 재배하는 농민들도 많다. 게다가 각종 과일 엑기스를 들고 나오는 이들도 여럿이다. 20여년전 산촌 휴양마을로 지정, 휴양형 산촌으로 변모하면서 자리잡은 축제다.
내가 유독 그 행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행사장 주변에 차려지는 천막들 때문이다. 천막은 마을 부녀회가 운영하는 식당이다. 그중에서도 순대국밥과 메추리구이는 꼭 먹어야하는 메뉴다. 품실제가 있을 때는 도시 친구들도 불러 하루종일 행사장을 누비며 쇼핑도 하고 외식도 하고 문화행사에도 참여하느라 늦게까지 논다.
특히 순대는 부녀회원들이 만들어 오래전에 옛날 맛을 되살려주곤 한다. 난 그걸 먹는게 최고의 즐거움이다. 순대국밥을 먹을 때는 막걸리, 메추리구이를 먹을 때는 소주를 마신다. 그 유별나고 행복한 행사가 끝나면 겨울이 시작된다. 그제서야 나는 지역의 일원이 됐다는 위안같은 걸 가졌었다. 그래서 올해 축제를 그냥 건너뛰는게 더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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