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세력 균형이 이뤄졌을 때 성장할 수 있었다.
20세기 초 일본의 영향력이 한반도에서 강해지고 이에 저항할 국내·외 정치적 수단도 고갈되자 국권 침탈의 수모를 겪었다. 그러나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던 한국전쟁 종전 이후 한국은 강력한 한미동맹 하에 냉전 시기(1960~80년대)동안 고도 성장기를 이뤄냈다. 소비에트 사회주의연방공화국(소련)이 무너지고 중국은 개혁·개방을 하면서 시장경제를 받아들였다. 1990년대, 2000년대를 거쳐 급속도로 성장한 중국은 기존 구대륙의 강대국과 일본을 밀어내고 미국의 턱밑에 이르렀다. 이른바 미중 패권 경쟁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력 격차는 2000년 8.5:1에서 2019년 1.5:1로 빠르게 줄어들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사드(THAAD·고공 권역 방위 미사일) 배치와 중국의 경제 보복에서 볼 수 있었듯이 전통적인 동맹 미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패권국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하는 한국의 전략적 외교가 중요한 시점이다.
◆갈수록 거세지는 미국과 중국의 세력 확장
냉전시기 미국과 소련처럼, 현재는 국제 질서에서 압도적인 힘을 자랑하는 미국과 중국이 서로 으르렁 거리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북한과의 남북과 평화협상이 진전되면 성사될 것으로 보이는 '종전선언'의 최종 서명 국가라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에서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스마트'한 외교는 불가피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새로운 시대의 미국'을 천명했다. 그는 지난 2020년 1월 23일 포린어페어지 3~4월 호에 실린 '미국 리더십의 복원'이란 기고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시민을 국민으로 통일시키는 민주주의적 가치에서 벗어났다"며 "미국의 민주주의와 동맹을 새롭게 하고, 미국의 경제적 미래를 보호하며 다시 한번 미국이 세계를 이끌도록 하기 위해 즉각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강조하는 것은 트럼프의 일방주의적 대외정책에서 벗어난 국제협조와 다자주의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탈퇴했던 파리 기후 협약에 복귀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아시아 외교는 '인도-태평양 전략(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지역)'을 이어받았다. 트럼프만 돋보였던 미국 우선주의와 일방주의와 달리 한국, 일본, 호주 등 동맹국 등과의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시진핑 주석은 2013년부터 9년째 중국에서 집권하고 있다. 임기는 오는 2022년까지인데, 내년 당대회에서 집권 연장이 유력하다. 시 주석은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을 이뤄내겠다는 '중국몽'을 기본 통치이념으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2049년(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주년)에 사회주의 현대화 완성' 등 을 추구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대외 정책으로 중국식 강대국 외교를 공식 천명하고 남중국해에서 중국 영향력 강화, 아시아투자인프라은행(AIIB) 창설, 일대일로(一帶一路·내륙과 해상의 실크로드) 전략으로 중국몽에 기여한다는 입장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두 달만에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네 나라 연대) 정상회의를 열고 한국과 일본과 외교 국방 각료급 2+2 회의를 개최하는 등 대(對) 중국 외교 공세를 취하자 중국은 러시아와 외상 화상 회담을 여는 등 미국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미국이냐, 중국이냐 선택 아닌 '국익'을 생각해야
외교는 국익 우선주의로 초당적 협력이 필요한 분야다. 한국 정치는 어느 정부가 집권하느냐에 따라 외교 정책이 뒤바뀐 바 있다.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에 대한 입장도 모호한 면이 많았다.
반기문 유엔 전 사무총장도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열린 글로벌외교안보포럼에서 "외교 분야에 있어 초당적 협력이 안 되는 나라는 한국을 빼고는 찾기 어렵다"며 "국가 지도자, 정치를 비롯한 여러 분야 지도자가 편 가르기보다는 통합을, 파격보다는 상식을, 독선보다는 공감을 실천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공공정책전략연구소 정책 제안서 '아젠다 K 2022'에서 외교 분야 발제를 맡은 위성락 전 외교부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은 한국 외교의 고질적인 문제가 깔려있다고 지적한다.
위성락 전 본부장은 ▲국제환경 변화에 둔감하고 자기중심적으로 대외문제를 보려는 관성 ▲국내 정치적 고려를 중심으로 대외문제를 다루면서 다중의 인기를 의식하는 포퓰리즘(대중 영합주의) ▲민감한 사안을 회피하려는 정치인과 관료의 보신주의와 영합주의 등을 지적했다.
위 본부장은 사드 배치 논란과 관련해 "저고도 미사일 방어망이 부족하다는 미국 군사 전문가의 문제 제기가 나오면 실제로 한국의 미사일 방어망, 보완 방법, 사드의 대안을 충실히 고려했어야 했으나 정부는 중국을 자극할 것을 우려해 사드 배치 문제와 거리를 뒀다"며 "결국 미국 측의 요청이 계속되고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이 계속되자 박근혜 정부에서 사드를 배치했는데, 중국의 보복이 이어지고 한국의 3불 약속(사드 추가 배치 불가·미국 미사일 방어체계 불참·한미일 안보 동맹에 불참)을 하게됐다"며 오락가락한 정부의 행보를 지적했다.
위 전 본부장은 차기 정부의 바람직한 대처 방안에 대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이 설 좌표와 나갈 방향을 설정하고 구체적인 정책을 통해 각인해야 한다"며 "미국이나 중국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설 좌표와 나갈 방향을 선택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 정책을 통해 한국의 행보에 일관성과 예측가능성 부여 ▲미국은 동맹, 중국은 동반자 역할 인지 등을 요구했다.
또한 위 전 본부장은 "동맹의 글로벌·지역적 역할 확대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일본·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에게 주어진 카드로 역학관계 풀어라
전문가는 앞으로 해결할 당면 과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경희대학교 주재우 교수는 14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외교 전략이 중국으로 치우쳐서도 안되고 미국으로 치우쳐선 안된다"며 "국익 우선주의에 기반해 미국과 중국과의 관계를 새로 적립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 교수는 "(정부가) 중국과는 사드 3불 합의부터 해결을 해야하고 미국과는 쿼드(QUAD·미국·인도·일본·호주 등 4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비공식 안보회의체), 오커스(AUKUS·미국·영국·호주 3국의 새로운 안보 파트너십), 과학기술 동맹 등에 대한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며 "중국과 차별을 줘선 안되는 문제라서 굉장히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주 교수는 초당적 협력을 강조하며 지금 정부가 국익조차 확립이 안된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초당적 협력을 하려면 국익이 확립돼야 하는데, 어떤 국익을 추구하는지 밑그림을 안 내놓고 있다"며 "초당적인 마음가짐도 필요하겠지만, 결국 주변 4강 외교를 잘 해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주 교수는 "주변 상황의 역학관계라든가 먹이사슬의 관계를 잘 이용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진보 정권이 들어서면 미국과 일본에 소홀하고, 중국·북한과는 잘 지내려고 하면서 러시아는 협력 관계로도 보지 않는다"며 "보수정권이 들어오면 미국에 치우쳐서 중국은 홀대하고 일본은 (여론 상) 일본을 싫어하고 그러니 초당적으로 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국익을 위해 협치를 해야하고 주변국과의 관계를 잘 이용해야 한다"며 주변국을 이용하는 좋은 예로 일본을 거론했다.
주 교수는 "일본이 중국을 움직이려고 하면 러시아 카드를 쓴다"며 "중국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일본과 러시아가 손을 잡는건데, 그런 사례를 보면 미국은 중국을 압박할 때 일본을 카드로 활용하는 것이다. 중국이 제일 두려워 하는 것이 일본"이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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