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기나긴 터널에서 빠져나오고 있는 대한민국은 '항구적인 지출증가와 세입감소'에 따른 국가채무 비율 증가 등 구조적 문제에 직면했다.
대한민국은 1980년대부터 30년간 낮은 국가 채무 비율을 유지해왔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증세 없는 복지 확대' 정책과 코로나19 위기로 정부 지출 증가 등을 거치며 국가 채무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 2011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30.3%였던 국가채무비율은 2020년에 43.8%로 늘어났다. 기재부는 오는 2025년엔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58.8%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상대적으로 낮게 유지했던 복지 지출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조세 부담과 국가 채무 비율까지 신경 써야 하는 '재정 트릴레마'에 놓인 것이다.
◆복지지출에 조세부담, 국가채무비율까지…재정 트릴레마(Trilemma)
국가재정에서 재정 트릴레마는 '높은 복지수준·낮은 조세부담·작은 국가채무'라는 3가지 정책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없다는 의미로 쓰인다. 대한민국은 국민 1인당 복지 수준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복지 지출 증가 규모가 선진국에 비해 크다. 또한 장기적으로 국가가 보장하는 복지가 늘어남에 따라 복지 지출이 늘어날 가능성도 높다. 다시 말해 높은 수준의 복지 정책을 펴기 위해선 시민들에게 세금을 더 걷던가, 국가 채무를 늘려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
재정 트릴레마에 대응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하나의 정책 목표를 포기하고 두 개의 목표만 추구하는 전략이다. 대한민국은 상대적으로 복지 지출을 낮게 유지하고 낮은 조세부담과 국가채무 비율을 유지해왔다. 반면, 높은 수준의 사회복지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북유럽 국가들은 낮은 조세부담을 포기했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222.5%(2017년 기준)에 이르는 일본은 낮은 국가채무를 포기하고 복지와 낮은 조세부담에 집중한 국가다.
이외에도, 국방이나 경제 같은 복지 이외 분야의 재정지출을 줄여 복지지출 증가를 일부 상쇄하고, 정부 몫이었던 사회 간접 자본 투자에 민간자금을 동원하는 방법도 쓰였다. 이 방법들은 한계가 뚜렷하다. 과거 정부에선 복지 이외의 지출 분야에서 복지로 재원을 재배분할 여지가 있었지만 지금은 과거에 비해 상황이 녹록지 않다.
민간 자본이 투입된 사업에 경우, 사업의 수익이 예상보다 적으면 적자분을 공공기관이 보전해주는 최소수입 국가운영보장제(MRG) 등이 '세금먹는 하마'로 지적받고 있다.
◆국회 문턱 못넘은 '재정준칙(Fiscal Rule)'
기획재정부는 국가채무를 낮게 관리하겠다고 선언했다. 코로나19 경제 위기 타개를 위해 지출을 늘렸던 지난해, 정부의 순수한 재정수입에서 순수한 재정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 적자는 3.7%였다. 최근 10년간 가장 큰 폭의 적자를 기록했다.
재정준칙은 재정 수지 적자, 국내총생산(GDP) 대비 채무비율, 정부 지출의 규모나 증가율 같은 재정건전성지표가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관리하는 규범이다.
해외 경제학자들과 IMF 등의 정의에 따르면 "재정준칙은 예산총액에 '숫자'로 표현되는 제약으로서 재정정책에 대한 장기적인 제약을 부과해 재정정책을 쉽게 변경할 수 없도록 제약을 설정한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재정준칙은 지난 2016년 정부 입법으로 도입을 추진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4차 추가경정예산(추경)이 편성되면서 정부 지출이 급증하자 재정준칙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이에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지난해 10월 국가 재정건전성을 관리를 위해 '한국형 재정준칙'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형 재정준칙은 2025년 회계연도부터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60%, 통합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3% 이내로 관리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를 제도화할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작년 국회에 제출됐지만, 아직까지 논의가 안되고 있어 재정 준칙 논의는 다음 정부에나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위기를 겪은 다른 국가들은 재정준칙을 도입해 운영하는 상황이다. 전세계적으로 재정준칙을 도입한 국가는 92개국으로 경제개발협력개구(OECD) 회원국 중에선 우리나라와 터키를 제외한 34개국이 도입했다.
박형수 K-정책 플랫폼 상임이사(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원장)의 지난 2010년 세미나 자료 '재정건전화 이슈와 EU의 재정준칙'에 따르면 "재정준칙이 초기에 도입되던 때에는 정부의 재정적자 경향성을 제어하기 위해사용 됐으나, 최근의 도입 추세는 미래의 잠재적인 재정부담(고령화 등)을 고려한 장기적인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관리하기 위해 도입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IMF에 따르면 미국, 영국, 스웨덴 등 주요 선진국들은 1개 이상의 재정 준칙을 도입해 국가 운영을 하고 있다.
재정준칙이 순기능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지난 2015년에 수행한 '재정준칙 활용에 관한 주요국 사례분석' 연구보고서는 재정준칙은 ▲지켜지지 못할 경우 정책 신뢰성 손상 ▲경제 위기 시 재정의 경기 대응능력 약화 ▲재정 조정 필요할 때 재정 준칙이 적절하게 작동 못 함으로써 재정정책 질 저하 ▲재정준칙 달성 위해 회계 조작 등 투명성 저해 가능성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부재해 재원 배분상 왜곡 유발한다고 정리하고 있다.
◆"재정개혁과 사회적 합의 필요한 시점 왔다"
전문가들은 재정 관리의 새로운 대응전략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공공정책전략연구소(KIPPS) 정책보고서 '아젠다 K'에서 재정파트 발제를 맡은 박형수 K-정책 플랫폼 상임이사에 따르면 ▲한국형 복지에 대한 합의 하에 복지 지출 증가 속도를 적정수준으로 제어 ▲경제가 중장기적으로 감내할 수 있는 국가 채무 수준에 대한 결정 ▲국민경제에 큰 부담을 주지 않도록 완만하고 지속적인 증세정책이란 3가지 재정 정책의 재균형을 도모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박 원장은 ▲기재부의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방안보다 보완된 재정준칙 도입 ▲예산편성 및 심의 시스템 개선 ▲전략적 지출검토 도입 통해 재정지출 우선 순위 재설정 ▲재정성과관리 강화 ▲차세대 디지털 국가예산·회계 시스템(d-Brain) 획기적 강화를 통해 기존 재정 관리의 한계를 극복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12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사회적 합의와 재정 개혁에서 극복 방안을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위원은 "재정 트릴레마는 중장기적으로 무조건 맞는 말이다. 결국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것"이라며 "지출을 줄여야 할지, 부채를 줄여야 할지, 증세를 해야할지 셋 다 싫어하는 것인데, 셋 중 하나는 무조건 해야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은 "각국의 조세부담률 대비 사회복지 지출의 연도별 변화 같은 것을 보면 상식적으로 사회복지를 늘리기 위해서 항상 증세를 해왔다고 일치할 것이라 생각한다"며 "하지만 부채를 통해 복지를 늘릴 때도 있고, 세금은 늘어나는데 복지가 줄 때도 있고, 세금은 줄어드는데 복지가 늘 때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것들을 시대 상황에 맞춰서 동태적 균형을 이뤄나가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라고 덧붙였다.
또한 이 위원은 "재정개혁은 세 부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인데, 우리나라에 개혁에 여지가 많다"며 "예를 들어 재정의 칸막이 기금 등 개혁할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위원은 "재정개혁을 우선적으로 하면서 사회적 합의를 구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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