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책을 읽기로 했다. 전염병 이후 인류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해서다. 마침 그럴만한 책이 한권 잡혔다. 이번 추석동안 읽기에 안성맞춤이다. 낡은 책꽂이를 훑어보는 재미도 새롭다. '콜레라는 어떻게 문명을 구했나'라는 번역서다. 십 수 년 전에 나온 책이다. 당시 신종플루가 우리 사회를 공포에 휩싸이게 했고 위생과 백신 등 혁신을 위한 논쟁이 치열하게 펼쳐지던 때다. 서문과 발문, 목차를 살폈다. 기억나는 내용은 하나도 없다. 다만 한가지 '질병과 치열하게 싸운 사회일수록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다'는 내용만이 남았을 뿐이다. 그 책은 위생, 백신 등 수많은 혁신이 승패의 열쇠라고 가르치고 있다.
며칠전 부모님이 계신 곳을 다녀왔다. 이번 추석에는 모이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번 추석 어찌 보내나' 고민스럽다. 명절에 가족과 함께 보내야하는 오랜 관습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맘이 아프다. 어느 사회학자의 말처럼 '코로나 이후 혈연 중심의 연대가 느슨해질 것'이라는 견해가 지금 내게도 증명되고 있는 셈이다.언텍트(비대면)와 재택근무 문화도 더 뚜렷해지고 있다. 결국 나의 언텍트방식이 독서로 귀결된 이유다.
고향을 떠난지 40여년 동안 명절에 고향에 가지 않고 부모, 형제들과 지내지 않는다는 걸 상상해본 적이 없다. 지난 설도 그렇지만 갑자기 달라진 환경에 쉽게 적응이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나의 연대 한편이 허물어지고 있다고나 할까. '원적산 DB손해보험연수원 밤나무숲에 가서 알밤이나 줍자'라고 계획을 하고도 무언가 허전하다.
아무튼 책을 다시 읽기로 하자. 어차피 불안, 걱정, 공포를 측정하기는 불가능하다. 애초에 안된다. 그렇다고 코로나19 이전으로 되돌아가기도 어렵다. 노동관계도 변했고, 삶의 연대도 변했다. 단적으로 재택근무하며 명절날 아내와 둘이서 보내는 것이 그렇지 않는가. 설령 그렇더라도 코로나와 싸우는 동안 우리의 수많은 혁신이 모여 혁명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희망은 있다. 어느 나라도 흉내낼 수 없는 'K방역'을 믿는 편이다. '허기사 그걸 믿지 않는다면 거기부터 절벽일테니….' 신봉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K방역의 성과는 검증된 터니 당연한 노릇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러서는 잠시 과거의 나를 돌아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또 잠시동안 만나지 못한 지인들을 생각했다. 코로나 때문에 생겨난 여유인건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절박함, 절실함 같은 것이라고 했야 맞다.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벌써 2년여간 날마다 확진자, 사망자 숫자를 보아왔다. 세계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광기와 충격도 목도했다. 요즘에는 백신 접종 현황이나 부작용 사례가 더해졌다. 눈물겨운 인류애와 헌신, 위대한 리더십, 치졸한 욕망도 지켜봤다. 과학의 영역이 정치적 논쟁으로 비화되는 양상도 그렇다. 무엇이 완전한 정답일 수도 없는 정치적 타락도 우리의 몫인 것만은 분명한 코로나시대에 진실은 코로나 이후 더 진전된 세상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전 회사의 한 동료는 내게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견디는 게 이겨는거야." 타당한 말이다. 그 말에 우리 삶의 방식은 물론 우리가 치뤄야 할 변화, 혁신이 담겼다는 걸 안다. 그건 누구나 다 안다. 또한 전염병이라는 게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게 아니라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됐을 수도 있다는 걸 안다. '앎'이 있다고는 하나 그것마저도 지적 암흑일 뿐인 이 상황에서 당당히 맞서기란 쉽지 않다. 가족들과의 연대를 잠시 유보한 이 모든 아픔, 이겨내는 것 말고 답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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