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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이규성의 전원에 산다] 잣나무골 태극묘

이규성 선임기자.

지난 광복절 전날 오후, 창문 너머 이마가 붉은 고양이 한마리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잣나무골에 사는 들고양이 서너마리 중 붉은 무늬를 본 적 없다. 또한 그런 고양이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대개 고양이 무늬는 갈색과 흰색, 검정, 고등색 등이 적당히 뒤석인다. 붉은색 혹은 분홍색 고양이는 난생 처음이다.

 

창가로 다가가 유심히 고양이를 바라봤다. 그런데 고양이 몸통은 청색이었다. 세상에 청색도 있다니. 신기했다. 도대체 붉은색과 청색 무늬의 고양이가 있었나 싶었다. 돌연변이가 나타날 것일까. 고양이는 창가를 지나쳐 텃밭쪽으로 사라지고나서 한동안 잔영이 어른거렸다.

 

다음날 이웃집에 태극기가 걸린 것을 보고서야 붉고 푸른 고양이의 정체를 알게 됐다. 유독 고양이를 좋아하는 옆집 초등학생 딸이 물감칠을 했으리라. 무슨 생각으로 그랬을까. 본래 누런 바탕에 검정색 줄무늬가 얼룩져 있던 고양이에게 새 옷을 입힌 듯 했다. 옆집애는 고양이를 유별나게 좋아한다. 고양이 뿐만 아니라 개와 새들도. 심심풀이로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미치자 고양이조차 예뻐보였다.

 

잣나무골에는 몇 마리 들고양이가 산다. 예전 내 딸은 학교갔다 돌아오면서 참치캔을 사다주기도 했었다. 그 바통을 이어받아 이웃들이 들고양이에게 여전히 먹이를 주고 있다. 헌데 고양이들은 참 신기한 녀석이다. 마당에 앉아 친구들과 삼겹살이라도 구워먹는 날이면 어떻게 냄새를 맡았는지 어김없이 몰려든다. 여기서 녀석들이 신기한 점은 개와 달리 구워놓은 고기그릇에 달려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기그릇을 바라보며 거리를 두고 가만히 지켜보다가 몇 점 던져주면 잽싸게 낚아채기만 한다. 애초에 고기 구우며 고양이와 나눠먹지 않겠다는 건 있을 수 없다. 애뜻한 표정으로 우릴 지켜보는 녀석에게 나눠주지 않고는 못 배긴다. 그래서 잣나무골 들고양이는 누구네 집에 사는 반려묘도 아니고 홀로 숲에 사는 숲냥이도 아닌 존재다. 이런 고양이가 간혹 쥐나 뱀을 잡아다 문앞에 놔두는 경우도 더러 있다. 자기에게 소중한 먹이를 바친다는 의미라고나 할까.

 

암튼 그런 고양이 중 한마리가 태극무늬 옷을 입었다. 그렇게 며칠동안 밤이슬이나 비를 맞고서야 점차 색깔이 빠져 서서히 본모습을 드러냈다. 그제사 물감을 칠했을 거라는 예상이 들어맞았다는 걸 알았다. 옆집애는 하필이면 붉고 푸른 태극무늬를 칠할 생각을 했을까 도통 궁금하다.

 

아주 오래전 이런 고양이들이 수난을 당한 적이 있다. 하루는 퇴근무렵 보령벼루 전승가인 이웃집 아저씨가 산토끼 두마리를 잡아 탕을 끓였으니 술과 곁들이자고 불렀다. 아이들과 아내를 데리고 이웃집 평상에 올라가 즐겁게 포식을 했다.

 

아내는 토끼고기를 발라 아이들에게도 먹이고 아저씨와 나는 밤이 이슥하도록 술을 마셨다. 마침내 이웃집 아주머니와 아내가 칼국수를 끓이겠다고 집안으로 들어가고 아이들도 엄마를 따라갔다.

 

"야, 이거 고양이고기도 맛있네."

 

"허걱, 고양이라니요?"

 

"실은 내가 벼루 조각하느라 신경통이 있지 않나. 그래서 잡은 거 아닌가. 식구들한테는 비밀일세."

 

그 순간의 당혹감이란, 잠시 후 칼국수를 먹는 것으로 나와 아저씨가 가진 비밀을 숲에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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