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人 머니 산업 IT·과학 정치&정책 생활경제 사회 에듀&JOB 기획연재 오피니언 라이프 AI영상 플러스
글로벌 메트로신문
로그인
회원가입

    머니

  • 증권
  • 은행
  • 보험
  • 카드
  • 부동산
  • 경제일반

    산업

  • 재계
  • 자동차
  • 전기전자
  • 물류항공
  • 산업일반

    IT·과학

  • 인터넷
  • 게임
  • 방송통신
  • IT·과학일반

    사회

  • 지방행정
  • 국제
  • 사회일반

    플러스

  • 한줄뉴스
  • 포토
  • 영상
  • 운세/사주
오피니언>칼럼

[이규성의 전원에 산다] 사람을 위한 길

이규성 선임기자.

내가 사는 곳에 도로 하나가 또 놓인다. 근처에 나들목도 생긴다. 수도권 제2외곽순환고속도로의 일부구간으로 중부선과 중부내륙선 접속을 통해 고속도로 연계를 목표로 경기 양평과 여주를 잇는 구간 공사가 곧 본격화된다. 수도권 제2외곽순환도로는 2009년부터 예비타당성조사, 타당성조사, 기본설계를 진행, 오는 2025년 개통하게 된다.

 

26년전 여주, 광주 접경으로 이주하던 당시 중부고속도로, 3번 국도뿐이었다. 지금 우리집을 둘러싼 교통망은 거미줄 같다. 판교와 여주를 잇는 경전철도 놓였다. 간혹 나는 전철로 광화문까지 출근하거나 서울의 다른 곳에 가기도 한다.

 

여기에 제2중부고속도로, 성남∼장호원간 전용도로, 제2영동고속도로 등이 새롭게 신설됐다. 아예 우리 마을에는 고속도로 휴게소가 두개씩이나 새로 생겼을 정도다. 그렇더라도 여기는 여전히 수도권의 변방이다. 수도권 변방조차도 삽질의 집요함이 산촌마을까지 뒤집어 놓은 듯 하다.

 

여주, 양평, 광주, 이천을 통틀어 한 두 단지뿐이던 아파트는 이제 도로를 따라 포도송이 처럼 개발됐다. 성남에서 이천으로 이어지는 3번 국도는 아파트단지로 덮혀 있다. 언젠가 매일같이 출퇴근하며 밟게 되는 3번 국도가 궁금해 시작점을 찾아나선 적이 있다. 3번국도가 시작되는 경남 남해 초전마을의 빗돌에 가보고는 문경새재를 지나 함경도 강계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드디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국토 종단 길 위에서 나는 어떤 자각같은 것이 생겨났다. 이렇게 늘상 길 위를 자동차로 달리는 삶. 좀 넌센스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언가 잃어버리고 사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한번쯤은 일터로 걸어서 가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직장이 있는 서울 여의도에서 집까지 80여㎞를 걸어서 퇴근한 적이 있다. 직장이 충무로로 이전한 첫날엔 집에서부터 걸어서 출근도 했었다.

 

그렇게 걷는 것에 재미를 들인 후 북한산 둘레길, 속초∼강릉 하파랑길, 남한강 도보길, 제주 올레길 등을 걸어보았다. 걷는 그 생생한 느낌은 도무지 설명하기가 어렵고, 그 감정을 간직한 채 지금 이 자리에 있다. 그런 시간, 새로운 길이 내게 주어질 태세다. 그 길은 내가 걸을 수 있는 길은 아니다. 순전히 자동차를 위한 길이다. 여기서 의문이다. '사람은 없고 자동차가 중요한 길?'.

 

그간 길을 걸어보면 인도가 아예 없거나 걷기도 어려울 정도로 폭이 좁을 곳을 만나기 일쑤다. 시골마을에서도 길 1㎞를 새로 내자면 수 억원이 든다고 한다. 따라서 교통사고 처리비용이 훨씬 더 경제성이 있다는 논리가 설득력 있기까지 하다. 새로운 길이란 누군가 교통사고로 죽더라도 인도를 만들지 않는 게 더 낫다는 자본주의의 폭력성도 새롭게 깔리는 셈이다.

 

이제 얼마 후엔 새로운 고속도로가 더해진다. 내가 걸을 수 없는 길, 슬퍼하기에는 웬지 사치스럽다. 편리함도 있으니까. 하루종일 차량 몇대 만나기 어려운 길을 열흘 이상 달려본 적이 있다. 그런데도 인도가 여럿이 함께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넓직하거나 인도와 차도 사이에 둔덕을 만들어 분리해 놓은 길이었다. 무려 9000여㎞ 넘는, 그 길이 그립다.

 

지금 우리 마을을 가로 지르게 될 제2수도권외곽순환도로를 상상해 본다. 많은 짐승들의 킬링필드가 될 것이란 생각도 든다. 사람도 배척받은 길일진데 동물에게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곧 공사가 시작되리라. 다만 좀 더 사람다운 길이길 바란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Copyright ⓒ 메트로신문 & 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