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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이규성의 전원에 산다] 내 텃밭의 허브는 어디서 왔을까

이규성 선임기자.

다시 코로나19가 극성이다. 백신 접종이 이뤄지면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란 희망도 잠시 유보했다. 언제쯤 맘놓고 회사에 출근하고 편하게 사람을 만나게 될까. 최근 외출을 삼간 채 한동안 잣나무골에 박혀 있다.

 

그래서 마트에 가는 대신 이웃들의 텃밭을 기웃거린다. 오늘도 풋고추, 상추 등 야채 한바구니를 따왔다. 이런 내 모습이 참 한심스럽다. 밭을 두고 아무 것도 가꾸지 않은 것에 대한 죄의식이랄까. 하여간 내 텃밭은 먹을 야채 하나 없다. 변명이지만 지금 농사를 지을 형편이 못 된다. 몇 년 전 큰 사고로 블랙 아웃된 상태에서 깨어난 이후 아직 온전치 않다. 봄철 채소를 심는 것 조차 힘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심드렁해진 탓도 있다.

 

결국 이웃 텃밭을 기웃거리고 서리도 한다. 그 정도는 허용된 것으로 위안하고는 있지만 마음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주로 야채를 따오는 이웃 텃밭은 두군데다. 앞집과 옆집. 앞집 텃밭은 500여평으로 토마토, 딸기, 오이는 물론 파, 상추, 고구마 등 없는 것이 없다. 토마토는 시장에서 사먹는 것보다 더 달다. 고추는 조금 과장해서 오이만 하다. 그만큼 텃밭이 울창하다. 아열대농장을 연상시킬 정도다. 밭이 넓어 봄철이면 도시에 있는 형제들이 다 와서 함께 농사 짓고 주말 가족모임이 늘 화목하다.

 

바로 옆집 텃밭은 주말주택으로 200평 정도다. 텃밭가에는 작은 연못 하나가 있다. 금붕어가 살고 있는 연못 주위로 앵두, 보리수, 자두, 대추 등 유실수 몇그루가 있어 자주 나무밑을 오간다. 간혹 꽃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야생화와 나무들이 많다. 밭에 가보면 한동안 따지 않아 채소가 시들어 있고, 늙은 오이도 집주인을 기다리다 지쳐 보인다.

 

어느 날 우리 텃밭이 허브로 뒤덮힌 것을 보고 의아해 한적이 있다. 밭에 나가 쑥을 캐던 아내는 한동안 놀라 소리쳤다. "어떻게 허브밭이 된거야?" 나도 놀라긴 마찬가지. 봄이면 아내는 쑥이나 돌나물, 취나물, 두릅, 오가피 등으로 식탁을 차리곤 했었다. 올봄에도 아무 것도 심지 못한 텃밭을 둘러보다 낯선 광경과 마주한 것이다.

 

도대체 어디서 왔으며 또 어떻게 번졌는지 도통 알 길이 없다. 게다가 보라색 꽃을 피운 게 예쁘기까지했다. 그걸 보고 우리는 끝내 채소를 심지 않았다. 바람이 일렁일 때마다 허브향이 그윽했다. 우리는 밭을 일구지 않고 텃밭과 야산에서 산나물을 따러 다닌다. 내 텃밭은 풀밭으로 만들어놓고 이웃 텃밭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20여년 전 집을 짓고는 주변에 취나물, 오가피, 두릅, 부추, 돌나물, 머위 등 뿌려놓듯이 심은 것들이 있다. 그게 지금은 적당량의 찬거리가 되고 있다. 이것들은 여러해살이다. 한 번 자라면 해마다 솟아난다. 그래서 전혀 손을 쓰지 않고 먹을 걸 얻는다.

 

한 번은 혼자 마당에 앉아 산나물과 막걸리를 즐기며 '박주산채'란 말이 떠올라 웃음지은 적이 있다. 그리곤 얼척없이도 '이렇게 소박한 술이 위로가 되는구나'라며 안빈낙도를 느꼈다. 소가 들으면 하품할 소리다. 전혀 그럴만한 삶이 아니면서도 관념은 무한정 자라나 다른 세계를 누비고 있으니.

 

올해 텃밭에는 허브가 저절로 자란다. 내 텃밭을 빈땅으로 놀려두고 이웃 텃밭을 기웃거리다니…. 그러면서도 이웃끼리 텃밭의 채소를 허용한 것이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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