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잣나무골은 공사판이다. 마을 도로에서 잣나무골로 이어지는 숲길 1㎞를 뚫고 상수도와 오폐수관을 개설하는 공사가 8월까지 진행된다. 그래서 날마다 콘크리트 등 길바닥을 깨부수는 소리가 요란하다. 이 공사는 주민제안사업으로 아스콘 포장을 한 지 1년 만이다. 작년에는 길을 재포장한다고 공사를 하고 올해는 상수도 놓는다고 길을 다시 파해치는 공사판이 이어지고 있는 것. 길이 포장되는 것 자체를 탐탁치 않게 여겼던 나로서는 감정이 여간 불편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공사비도 무려 3억2000만원이나 된다. '이렇게 많은 세금이 들어간다고?'.
잣나무골은 그저 심심한 전원마을이 아니다. 뒤집고 덮고 깨고, 온갖 공사가 늘상 펼쳐졌다. 내가 불편한 이유는 그 공사판 삽질마다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매달려 각종 예산을 따먹고 배를 불리는 일이어서서만은 아니다. 도시로 치면 매년말 멀쩡한 보도블럭을 교체하느라 야단법석인 것과 다르지 않다. 하여간 세상을 공사판으로 만들어 삽질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여기도 수두룩하다는 게 제일 아픈 대목이다.
이 숲길은 차가 교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좁다. 내가 처음 여기로 이사온 23년 전에는 비포장 시골 농로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 몇해 지나 서너 가구의 집이 들어오고 나서 시멘트 포장이 이뤄졌다. 잣나무골 주민들은 반겼다. 물론 지금껏 길이 넓혀진 것은 아니지만 당시 말끔해진 숲길이 좋다고 했다. 나는 포장하기를 원하지 않았지만 그건 혼자만의 생각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포장된 길이 훼손되자 이번에는 아스콘 포장을 했다. 숲길 공사가 마지막으로 이뤄진 것은 작년이다. 도로 위에 다섯개의 우수관도 설치했다. 장마 때 도로에 빗물이 고일 정도인데 굳이 우수관이라니. 나는 또 반대 입장이었으나 목소리를 키우진 못 했다.
이 숲길 만큼 수난 당한 곳은 또 있다. 길과 접한 계곡이다. 평소에는 말라 있다가 장마에는 물이 흘렀다. 그렇다고 도로 위로 넘칠 정도는 아니었다. 4대강사업이 마무리될 때쯤, 큰 장마에 토사가 일부 유출된 다음 계곡 1㎞가량을 정비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돌 축대가 쌓였고 몇 년 지나 바닥까지 콘크리트 블럭으로 깔렸다.
이렇게 삽질에 숲길과 작은 계곡의 운명이 또 수난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맨 처음 흙길을 밟을 수 있다는 데 감동하곤 했다. 서울에 직장이 있어 출퇴근할 동안 큰크리트와 시멘트 위에서 산다.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는 한 흙길을 거의 밟지 않는다는 게 내겐 여간 마뜩찮았다. 그래도 공사가 이뤄질 때마다 잣나무골 주민들이 원하는 것이니 잠자코 있었다.
길은 아스콘으로 덮히고 계곡은 콘크리트로…. 이게 전원인가 도시인가. 간혹 의문이 든 적도 여러번이다. 이번에 상하수도가 놓여지면 더 공사판이 이뤄지질 않길 바랄 뿐이다. 전원주택이 다 그렇듯이 자체 정하조와 지하수를 쓴다. 공용 상하수도를 놓으면 정하조와 지하수는 폐쇄된다. 이해가 엇갈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또 조금 지나면 잣나무골로 도시가스가 들어올 판이다.
이런 문제를 논의하는 마을 회의 때 주민 중에는 우리도 개발하고 발전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이 있다. 사실 그들을 이길 자신이 없다. 공사판을 벌려놔야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공무원. 그 예산 따기에 혈안인 공사업자들. 개발만능에 취해 있는 일부 주민의 카르텔은 생각만해도 막막할 지경이다.
이제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지위에 올랐다. 문화, 경제, 기술적으로. 이런 변화에 대부분 환영한다. 하지만 천천히 가는 곳도 남겨놓기를, 개발의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이 자제할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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