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人 머니 산업 IT·과학 정치&정책 생활경제 사회 에듀&JOB 기획연재 오피니언 라이프 AI영상 플러스
글로벌 메트로신문
로그인
회원가입

    머니

  • 증권
  • 은행
  • 보험
  • 카드
  • 부동산
  • 경제일반

    산업

  • 재계
  • 자동차
  • 전기전자
  • 물류항공
  • 산업일반

    IT·과학

  • 인터넷
  • 게임
  • 방송통신
  • IT·과학일반

    사회

  • 지방행정
  • 국제
  • 사회일반

    플러스

  • 한줄뉴스
  • 포토
  • 영상
  • 운세/사주
오피니언>칼럼

[이규성의 전원에 산다] 오이지를 담가야겠다

이규성 선임기자.

마을 오이농장에 가면 한박스 100개가 5000원이다. 한 번 오이지를 담가 1년을 먹을 수 있다. 대개 두박스를 산다. 그럴 땐 웬지 고생스레 경작한 농작물을 헐값에 강탈하는 기분이다. '안절부절', 미안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이건 상품성이 떨어져 시장에 내기가 어려워. 따로 치워놓은 것들이야. 우리가 오이지 담가먹으려고 했었어. 왔으니 좀 싸게 주는 거니까 그냥 갖고 가."

 

살펴보면 마트에서 대여섯개 한묶음으로 파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싱싱하고 큼직하다. 그런데도 그는 시장에 내기 어려웠다고 한다. 나는 안다. 내가 미안스러운 마음을 배려해 그렇게 말하는 것이라는 걸. '하여간 저 '츤드레'하고는.'

 

농장주는 가락시장에 한 박스 1만여원에 내지만 내겐 '이웃 DC'를 적용해 준다. 전원에 산 덕을 보는 셈이다. 그 농장에서 종종 감자, 고구마, 당근 등을 1~2 박스 산다. 한동안 별도의 장보기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조금 많다싶으면 도시친구들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장을 보는 방식은 도시사람과 좀 다르다. 주로 양평, 곤지암, 이천 등 인근 오일장을 이용한다. 휴지나 치약 등 생필품은 마트를 이용한다. 그리고 곤지암 아파트단지에서 열리는 '월요직거래장터'를 찾기도 한다. 오일장에선 대략 치킨 한마리에 칠팔천원이다. 예전부터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장날 기름솥에 지글지글 익혀지는 치킨을 산다. '장날 길거리 음식은 왜 그리도 맛있는지'. 일부는 텃밭에서 자급자족하고 일부는 전통 5일장을 찾는다. 이렇게 소비생활은 여러 방식이 혼재돼 있다.

 

온라인 장터는 익숙치 않다. 사실 인터넷으로 물건을 산 적이 거의 없다. 요즘 젊은이들은 시장에서 가격, 품질, 취향 등을 확인하고 집에 들어가 인터넷에서 구입한다. 아주 합리적인 소비방식이다. 그쯤은 안다. 하지만 그게 어렵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배달시스템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한국적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저녁에 주문하면 새벽에 배달된다?'. 쿠팡, 마켓 컬리 등 온라인 마켓에서 장보기가 일상화된 시대다. 유독 마을 농장이나 재래시장을 오락가락하는 내 모습이라니. 여전히 뒤떨어진 채 뒤죽박죽이다. 그런데 오이농장이나 시장을 찾으면 웬지 모를 푸근함과 따뜻함에 사로잡힌다. 장날 시장사람들과 물건을 놓고 흥정하거나 덤을 좀 더 요구할 때면 정겹기까지 하다. 그게 다른 사람의 모습이거나 내 모습이거나 마찬가지다. 그 속에 어울려 은근히 사람냄새를 느낀다. 그리고 야릇한 기분에 빠져들곤 한다. 내가 이용하는 농장은 오이농장만이 아니다. 마을의 딸기농장, 토마토농장, 포도 농장 등 많다. 몇해전부터 딸기농장은 도시 아이들을 위한 체험학습장을 겸하고 있다.

 

한 번은 딸기농장에 가서 놀란 적 있다. 그곳은 그저 그런 비닐하우스밭이 아니었다. 하우스 천장은 내 키보다 서너배는 높았고 딸기는 흙에서 자라지 않았다. 수경재배된 딸기는 티끌 하나 뭍지 않고 깨끗했다. 주렁주렁 탐스럽게 3층으로 재배되는 딸기다. 주인은 농약을 치지 않는다며 씻지도 않고 직접 먹어보기까지 했다. 예전에 "가락시장에선 농약 기준치가 조금만 넘어도 팔 수가 없다"던 오이농장주인 말이 생각 나 고개를 끄덕인 적 있다. 그래서 농사짓기가 편해진 것도 있고 더 힘들어진 것도 있다는 푸념을 이해한다. 농장이나 시장에 가면 늘상 새로워지는 세상을 배운다. 그곳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위로와 배움을 얻는다. 올해도 오이지가 잘 익었으면 좋겠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Copyright ⓒ 메트로신문 & 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