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시작되고부터 나와 친구들은 사가정의 한 식당을 아지트로 삼았다. 아주 흔하디 흔한, 특별한 매력이라고는 없는 식당. 그러나 우리는 시간만 되면 그 식당을 찾았다. 그곳에서 만난 조선족 할머니와의 인연 때문이다. 할머니가 내주는 음식은 웬지모를 정성이 담겼다고나할까.
그 할머니가 고향인 중국 연길로 떠났다. 떠나기 직전 송별회를 가졌다. 그 식당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만든 자리였다. 할머니는 그곳에서 10여년 이상 일했다. 우리는 가끔 요리법을 물어볼 정도로 할머니 음식을 유별나게 좋아했다.
식당에서는 별도로 퇴직금을 줬다. 그말을 전해 듣고 '직원이 두명뿐인 식당에서도 퇴직금을 주는구나' 새삼 놀란 적 있다. 할머니의 성실함, 정성스런 음식솜씨가 벌써 그립다. 송별회에서 우리는 할머니한테 조촐한 선물을 전하고 이별을 아쉬워했다.
'할머니가 떠나도 우린 이 식당을 또 찾아오려나'. 할머니와 그녀의 남편은 열심히 일한 덕분에 아파트 두채와 노후자금을 마련, 행복하다고 했다. 끝내 할머니가 눈시울을 붉히자 우리는 할머니의 고생스런 서울살이, 맛깔스런 음식을 얘기하며 더 즐거운 여생을 기원했다.
송별회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 할머니는 옆집 카페에서 커피를 사다가 한잔씩 나눠줬다. 그리곤 "은퇴하면 다같이 연길로 꼭 놀러와"라고 했다. 그때 나와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어쩔 수 없는 동족이구나"라고 나즈막하게 합창했다. 중국에 살았던, '대한민국에 살았던, 다를 게 없네'라면서.
지난해 할머니는 고향인 연길로 돌아가려고 했었다. 그러나 코로나19에 발목이 잡혔다. 이제 할머니의 한국 여정은 끝났다. 지금쯤 고향에서 황혼 여행을 새롭게 시작하고 있을 터다. 코로나가 끝나고 연길에서 다시 만나기로 한 약속도 귓가를 맴돈다. 여기까지가 어느 식당 주방 할머니와 식당 손님과의 얘기다. 소소할 따름이다. 들어보면 허무맹랑할 정도로 에피소드도 없는, 들어볼 것도 없는. 그런데 나와 친구들이 가졌던 송별회가 한국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는 우리 모두의 인생을 변화시켰다. 그런 와중에도 변하지 않는 게 우리들 마음인 것 같다. 그저 소소하게 마음을 나누며 부대껴가는 일상, 나눔속에서 마음만은 한결같다는 생각을 한다. 20여년전 DJ정부 시절 중국 심양을 방문했다. 그 때 심양의 관료, 기업인들과의 오찬에서 한류(韓流)에 대한 주제가 화제였다. 당시 중국 지도층은 처음으로 등장한 한류 현상을 탐구하느라 바빴다. '한류 ?', 당시 한류라는 말은 중국에서 처음 나왔던 듯 하다. 하지만 한류가 무엇이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우리는 문화와는 거리가 멀어 대답이 궁색했다. '한류'란 용어에 대한 정의도 확립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한국인이 향유하는 문화적 방식'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들은 황당무계하게 '공자'가 어쩌구저쩌구, 동양적인 문화가 어쩌구저쩌구 하며 한류에 구구한 해석을 덧붙였다. 우리들은 한국인들만의 감정, 정서가 만들어낸 문화라고 답했다.
그들은 또 물었다. 그 유별난 정서가 무엇이냐고. 한국인들은 '한(恨)', '정(情)'. '흥(興)'이란 감정이 있다고. 역사적·집단적으로 공유한 슬픔, 고통을 한이라고 하고, 공동체적인 이끌림을 정이라고 하며 함께 누리는 즐거움이 흥이다라고. 그 감정과 정서가 만들어낸 노래와 춤이 한류라고 여러번 얘기해도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끝내 우리는 그런 감정과 정서를 제대로 이해시키지 못한 채 자리를 떴다. 지금 한류라는 물결이 세계를 휩쓸고 있다. 포스트코로나 이후 한류는 문화뿐만 아니라 경제, 정치, 국방, 환경 등 전 영역에서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아주 평범한 조선족 할머니와의 이별도 한류를 만들어온 바탕이라고 여겨진다.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우리들의 방식, 그저 작은 마음이 오가는 따뜻함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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