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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이규성의 전원에 산다] '보세권'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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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세권'이라고 들어봤어?"

 

얼마전 친구가 난데없이 묻는다. 금시초문이다. 요즘 도심생활자에게 '숲세권', '학세권', '편세권', '공세권', '병세권', '슬세권' 등 다양한 용어가 유행한다지만 뜬금 없는 말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요즘 노년층에게 유행하는 말로 '노인들이 걸어(步) 다니며 놀고 대화할 수 있는 친구들이 사는 곳을 보세권'이라고 한다. 그리고 '어떻게 그 말을 처음 들을 수 있냐'고 타박한다. 그는 또 "보세권 내 친구들이 많을수록 성공한 노년"이라고 덧붙였다. "허걱, 그렇다면?" 웬지 암울하다.

 

나에게 가까운 친구라야 사는 곳이 30㎞가 넘는다. 그나마 이 친구가 서울 강동에 살아서 고속도로 인터체인지를 이용할 수 있어 가끔 만날 뿐이다. 고향친구들은 모두 전국에 흩어져 있다. 포항, 평택, 대전, 인천, 고양, 의정부…. 1년에 두어번 모임에서나 본다. 도시민들에게 보세권이라면 나에겐 '차(車)세권'이라고 해야 어울릴 듯 하다.

 

이 친구는 30여년 동안 한 학교의 교사로 강동에서만 살았다. 시장이든 상가든 친숙한 사람이 많다. 예전에 학부모였던 사람들, 수많은 제자들 뿐만 아니라 교회신자들. 아무튼 인생부자라고 할만큼 그의 보세권 내에는 그와 인생을 나눈 이들이 무척 많다.

 

반면 나의 보세권에는 친구가 없다. 함께 여가를 보낼 사람들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마을 사람들이다. 마을 사람들은 주로 회관에 모여 지내곤 한다. 여기서는 마을 회관이 일종의 커뮤니티 공간이다. 그곳에는 노인회, 부녀회, 청년회가 쓰는 공간이 나뉘어 있다. 회관 중심으로 대화와 교제가 이뤄진다. 그러나 내가 끼어들 자리는 마땅치 않다. 간혹 마을 회의 때 나가보기는 한다. 청년회라고해서 내나이 또래 장년 두어명이 있지만 일상적으로 만나기는 어렵다. 가끔 만나는 걸로는 여전히 서먹하다. 게다가 아직 노인회에 참여할 나이도 아니고. 또 내가 교제해왔던 사람들은 마을 사람들과는 전혀 다르니, 마을 사람들은 '인생을 함께 영위해온 사람들'이 아니어서 가깝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고 보면 은퇴를 앞둔 이들에게 노년을 함께 보낼 사람도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세대인 우리에게 노년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많다. 새로운 교제와 커뮤니티, 일 등. 그런데 '보세권이라는 신조어가 은근히 아프게 다가온다. 이런 말들은 왜 그리도 잘들 만드는지.

 

친구에게서 보세권이란 말을 들은 이후 내 보세권(차세권)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을 꼽아봤다. 그렇게 많지는 않다. 이곳에서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대부분 전원생활자들이다. 꽤 오래전 인근 초등학교가 골프특성화학교로 지정되면서 학교내 골프연습장이 생겼다. 일부 시간은 주민들에게 개방했는데 그 당시 골프모임 동호인들이 여기서 교류하고 있다. 그 모임은 마을 주민 서너명과 전원생활자 열댓명, 그 중 몇몇과 지금껏 왕래를 이어오고 있으니 그나마 나의 '차세권' 친구들인 셈이다.

 

그러나 나이 차이가 있다. 대부분 나보다 열 살 정도 위다. 친구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교류가 이어지고 있으니 친구라는 범주에 넣기로 하자. 이들에게 나는 가끔씩 '제삿상에 잔 부어올릴게요'라고 농담을 한 적 있다. 우린 모임 후 함께 회식을 하거나 골프여행을 간 적도 몇 번 있다. 그러나 앞으로 더 이어질 지는 장담할 수 없다.

 

몇몇은 서울, 안양 등 도심에도 집이 있어 겨울에는 도시로 갔다고 봄에 돌아오기도 한다. 또 자녀들에게 살러 가거나 외국으로 떠난 이도 있다. 골프연습장이 폐쇄된 뒤로 일상적인 모임은 중단됐다. 그저 '번개팅'으로 한때 골프동호인 회원으로서의 연결을 이어나가고 있기는 하다.

 

토박이들과 알고는 있다. 다만 대화를 나누거나 교류하지는 않았다. 일하고 살아가는 방식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제 내 삶의 친구, 벗들을 재편해야할 시기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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