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후배가 카페를 차렸다. 양자산 초입, 붉은 벽돌 두채의 채나눔 구조로 된 카페는 지방도로에서 500여m 떨어져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한채는 동호인이 사용하는 가구 공방, 다른 한채는 건축, 사진 관련 서적이 진열된 책방이다.
예전엔 카페자리 인근에서 간혹 천주교인이 모여 순례를 시작하던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바로 산너머 앵자봉 천진암에 이르는 한국판 산티아고길, 말하자면 성지순례길이었다. 제복을 입은 수녀 혹은 신부님의 인솔을 따라 등산을 하는 사람들의 행렬은 여느 등산객과 분위기가 달랐다. 왠지 숙연하고 조용했다. 지금은 남한산성과 천진암을 잇는 121㎞의 광주순례길이 만들어진 뒤로 그 길은 잊혀져 가는 듯 하다. 광주시가 주도하는 관변 순례길이 민변순례길을 밀어냈다고나 할까.
개인적으로 그 길을 추억하자면 처음 정착하던 시절 양자산 중턱까지 계곡을 따라 어린 아이들과 등산하던 곳이기도 하다. 당시 버너에 토종닭 하나 올려놓고 닭고기가 익는 동안 나물을 채취하거나 산 매실, 버섯을 따러 산을 누볐다. 그리곤 아이들이 지칠 무렵 계곡가로 내려와 백숙을 즐기고는 책도 보고 낮잠도 자곤 했었다.
그리고 아이들과 산나물을 뜯던 어느날 산삼 여덟뿌리을 캤다. 얼마 후 어머니, 형님과 셋이서 또 일곱 뿌리를 캤다. 다른 하나는 난생 처음 자연인을 만났던 일이다. 그 아저씨는 가냘프고 마른 체구와는 어울리지 않게 개 두마리를 벗삼아 자급자족하며 홀로 살았다. 아이들은 그를 멧돼지아저씨라고 불렀다. 나의 유별난 등산, 아이들의 유년이 배여있는 그곳은 지금 예전과 완연히 다른 풍경으로 바뀌었다. 양자산 숲과 계곡이 내게 특별했던 풍경도 사라졌다.
이젠 수 ㎞나 이어지는 계곡 주변으로 전원주택이 가득찼다. 전원주택, 팬션, 주말농장 등 휴양형 농촌으로 변모했고 옛 풍경을 찾기란 쉽지 않다. 양자산 뒷편 광주 퇴촌은 수도권내에서 대표적인 전원주택지다. 반면 양자산 남쪽인 이곳은 표고버섯이나 나던 산골마을이었다. 산 하나를 두고 남쪽과 북쪽이 전혀 다른 풍경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도심의 달동네가 뉴타운 개발로 아파트촌이 됐다면 여기서는 한적한 숲이 거주지로 탈바꿈했다는 점이 같다. 또하나 같은 점은 도시의 아파트 개발이 가난한 원주민을 더 변두리로 내모는 것 처럼 숲속의 맷돼지아저씨도 다른 숲으로 내몰았다는 것이다. 지금 멧돼지아저씨가 살던 모습은 찾기 어렵다. 달동네가 사라진 것 처럼, 그의 터는 흔적도 없을 정도니…. '젠트리피케이션'이 이 숲속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는 게 그저 놀랍다. 맑고 시원했던 계곡만이 내가 산삼을 캐고 나물을 따던, 천주교인이 성지순례하던 기억을 간직해줄 것이라는 생각에 작은 위안을 가져볼 뿐이다.
카페가 있는 곳에서 서편은 양자산, 동편은 이포나루로 가는 길, 동남쪽으로는 원적산이 자리잡고 있다. 이 마을은 고려 명장인 서희장군이 때어나서 묻힌 곳이다. 그 옆 마을 원적산은 천도교 2대교주인 최시형의 묘소가 있는 곳으로 천도교의 성지다. 양자산 앵자봉 아래 광주 퇴촌, 천진암이 자리잡고 있다. 이 또한 천주교의 성지다. 이포나루로 가는 길은 조선시대 의적으로 알려진 장길산이 공물을 털어 달아나던 도주로다. 장길산패거리는 3번 국도를 따라 올라오다가 이포나루를 건너 양주로 숨어들곤 했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양자산 숲에 대한 나의 스토리텔링이다. '아, 내 산삼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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