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들 "암호화폐 거래소 불투명, 인프라 구축이 먼저"
최근 다시 가격이 오른 암호화폐(가상화폐)가 암초를 만났다. 본격적인 과세 논의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상당수 자산 거래량이 침체되며 반사적인 수혜를 누린 상황에서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5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하반기 발표할 세법 개정안에 암호화폐 과세방안이 담겼다. 기재부 관계자는 "구체적인 과세방안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을 아꼈다. 20%의 세율을 적용하는 기타소득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불거진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최종 거래 금액의 필요경비 60%를 제외한 뒤 남은 40%에 20%의 세율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투자자들은 손실이 났을 경우에도 원천징수 의무가 생긴다며 취득가 산정에 문제가 있다고 반발해 왔다.
최근 암호화폐는 요동치는 증시 상황과 대조된 모습을 보였다. 암호화폐 대장주인 비트코인의 흐름을 보면 알 수 있다. 지난해 800만원 선을 오가며 부침을 겪었던 1비트코인(XBT)의 가격은 지난달 19일 990만원 선까지 상승하더니 지난 4일 1080만원 수준까지 뛰어 올랐다. 비트코인이 오른 시기와 신종 코로나 이슈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시점이 맞아떨어졌다.
최근에만 지난해 말 대비 30% 이상 상승했다. 비트코인은 글로벌 증시가 흔들리며 안전자산으로 대표되는 금과 함께 값어치가 뛰어올랐다. 암호화폐를 대체 투자처로 인식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과세 문제와 암호화폐의 상승세가 맞물리며 논란이 불가피해졌다. 투자자들은 투기적 요소를 부각해 옥죄더니 갑자기 정책 기조를 바꿔 시장의 혼란을 불러왔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가 한국거래소 처럼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은 것도 볼멘소리를 높이는데 한몫했다. 한 투자자는 "투자자보호 방안 등 법적 미비점을 보완하지 못한 상황에서 과세를 부과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징세의 행정적 편의 측면에서는 기타소득이 유리하다. 암호화폐 소득에 양도소득세를 적용하려면 정확한 취득가격과 양도가격을 모두 파악해 차액을 계산해야 한다. 암호화폐 거래소로부터 거래내역을 일일이 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적인 여건상 쉽지 않다. 투자자들 사이에서 "시기상조"라는 얘기가 들리는 이유다.
국내 한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명확한 기준이 없어 그동안 혼란을 겪어왔던 만큼 이번 기회에 확실한 규정에 대한 논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어떤 식의 유권해석이 나올 지 관심 있게 보고 있다. 비트코인은 거스를 수 없는 시장 흐름이라는 것을 정책당국도 인정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비트코인의 강세 추세 여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9300달러 수준에서 저항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17일 암호화폐 비트코인이 두 달만에 1000만원을 돌파했다. 서울 강남구 암호화폐 거래소 전광판에 비트코인 시세가 보이고 있다. /사진 뉴시스
암호화폐에 세금을 매기겠다는 기재부의 시도는 처음이 아니다. 암호화폐 열풍이 한창이던 2018년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이미 암호화폐 과세방안을 추진한 바 있다. 당시 명확한 과세 근거를 찾지 못해 결국 백지화했다. 다시금 나온 암호화폐 과세방안은 최근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6월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가 가상통화를 무형자산이나 재고자산으로 분류한 데 따른 후속 조처로 보인다. 한국은 lASB에서 정한 국제회계기준(IFRS)을 따르고 있다.
만일 양도소득세나 거래세가 적용된다면 암호화폐가 '통화'를 넘어 '자산'으로 공인받는다는 의미기도 하다. 주식·채권·신탁 같은 금융상품은 아니더라도 무형자산의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김용민 연세대 법무대학원 교수는 "과세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소득세를 부과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라며 "과세할 수 있는 체계를 정착시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