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분석'의 대명사로 불리는 애널리스트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기업분석과 주식매매까지 인공지능(AI)으로 대체되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어서다. 최근 금융 AI 벤처기업 씽크풀이 주문비서라 불리는 '라씨트레이더'를 선보인데 이어 코스콤의 야심작 '로보애널리스트'도 올해 상반기 출시를 앞두고 있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AI가 리서치센터 역할을 대신하며 자연스레 애널리스트의 역할과 영향력은 줄어들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 "전보 혹은 이직"… 리서치센터의 축소
지난해부터 감지됐던 리서치센터 인력 축소 분위기는 올해 신년 인사에서도 피해가지 못했다. 대형사와 중소형사 할 것 없이 많은 애널리스트가 전보 조치를 받았다. 120여명의 연구원 중 약 20명을 타 부서로 옮긴 한국투자증권이 대표적이다. 한투증권은 기업금융(IB) 지원 강화를 위해 기존에 5개이던 리서치센터 부서를 3개로 통합했다. 이직도 많았다. 송치호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AI 스타트업체 '퓨리오사'로 자리를 옮겼다.
세대교체에 나선 곳도 여럿이다. 신한금융투자는 양기인 리서치센터장의 후임으로 윤창용 센터장을 낙점했다. 윤 센터장은 1977년생이다. 미래에셋대우 리서치센터를 이끌던 구용욱 전 센터장은 Sage솔루션본부장으로 보직을 바꿨다.
제구실을 못하는 리서치센터도 생겨났다. 지난 2018년 14명의 애널리스트가 활동하던 BNK투자증권 리서치센터는 지난해 대다수가 인사이동 하거나 퇴직하며 현재는 5명뿐이다. 회사 측은 " 아직까지 추가적인 채용 계획은 없다"고 했다. 증권가에선 BNK투자증권 리서치센터가 사실상 해체수순을 밟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양증권도 상황이 비슷하다. 이 회사 관계자는 "리서치센터 부서원 몇 명이 인사이동으로 떠났다"고 귀띔했다.
애널리스트의 업무 영역에도 문제가 생겼다. 10년 이상 근무한 한 제약·바이오 담당 애널리스트는 "옛날과 달리 기업의 실적이나 주가를 결정지을 수 있는 요소들이 복잡해졌다. 분석하기가 쉽지 않아졌다"고 말했다. 면밀하게 분석할 수 있는 데이터도 없을뿐더러 글로벌 악재 등 추가적인 변수가 많아진 만큼 명확한 의견을 내기 힘들어졌다는 설명이다.
애널리스트들의 수는 매년 줄고 있다. 5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권사 57곳에 등록된 애널리스트는 총 1087명이다. 1575명이었던 2010년과 비교하면 31%나 감소했다. 증권사들이 IB와 자산관리(WM) 위주로 사업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리서치센터가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씽크풀의 로봇 알고리즘이 한 종목에 대해 각 기업의 매출액증가율, 자기자본증가율, 부채비율, 유동비율, ROA, ROE 등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
◆ 투자자들의 '정보 창구', 이젠 AI가
머지않아 AI가 투자자들의 '정보 창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리서치센터가 축소되며 상장기업에 대한 분석 리포트도 줄게 됐지만 문제 되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코스콤은 올 상반기 '로보애널리스트'를 출시한다. 데이터 오피스를 기반으로 분석된 자료를 AI가 투자자들에게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플랫폼이다. 투자자가 보유하고 있는 종목에 대한 각종 정보를 수집한 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종목에 대한 시장 반응, 주가 상황 등 정보를 공유한다. 고객은 주식을 팔고자 할 때 자신의 투자성향과 자산 포트폴리오에 맞게 새로운 종목을 추천받을 수 있다.
코스콤 관계자는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로보애널리스트 역시 발전할 것"이라며 "한 증권사와 협의 단계에 있다"고 말했다.
씽크풀이 출시한 '라씨트레이더'도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라씨트레이더는 딥러닝 기반의 AI주문 집행 서비스다. 효과적인 주문 체결을 위해 제작됐지만 AI주문전략서버가 예측한 주식시장, 업종, 종목과 관련된 빅데이터를 공유받을 수 있다. 씽크풀에서 출시한 라씨의 한 구성 부분인 'R2'는 데이터를 분석해 투자자들에게 제공하는 애널리스트의 역할을 한다.
씽크풀 관계자는 "그동안 로봇 투자는 기관 투자자를 중심으로 활용돼 왔지만 머지않아 개인 투자자들에게도 상용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기술을 고도화해 소액 투자자에게도 맞춤형 투자정보를 비롯한 과학적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