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불매 운동이 확산되면서 유통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단순 불매에 그쳤던 과거와 달리, 제품 성분부터 기업 지분까지 파고드는 '일본 색출' 움직임이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어서다.
한층 치밀해진 불매 운동 양상에 따라 업계는 일본 지우기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일본 제품의 판매를 중단하거나, 일본어로 된 제품명을 전면 교체하고 나섰다.
업계가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불매 운동에 적극 동참하는 이유는 '친일 낙인'을 피하기 위해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자칫 친일로 몰릴 수도 있어 살엄을판을 걷는 분위기"라며 "비용이 발생하더라도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바꾸고 교체하고…日 지운다
5일 업계에 따르면 CU는 지난달부터 일부 일본 직소싱 제품의 수입을 중단했다. 인기 상품인 '모찌롤'이나 일본 라면 등이 해당한다.
또한, 일부 '왜색'이 짙은 제품명은 교체된다. '모찌롤'은 일본어 '모찌'가 쓰인 만큼 롤케이크로 명칭을 변경한다.
CU 측은 "일본 직소싱 제품은 재고만 팔고 더 이상 안 팔 가능성이 높다. 비슷한 품질의 대체 상품을 찾고 있는 중"이라며 "'모찌' 시리즈는 롤케이크로 명칭으로 바꾸고, 8일 출시되는 수박·메론맛 시리즈부터 적용한다"고 설명했다.
국민 정서가 '반일'로 흐르면서 향후 편의점 내 일본 제품의 비중은 더욱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대표 타깃이 된 일본 맥주는 이미 전월 대비 매출이 반토막 수준으로 전락했다. CU의 지난 7월 1일~8월 4일까지 일본 맥주 판매량은 52% 수준으로 급감했다.
편의점들은 일본 맥주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감을 고려해 지난달부터 4캔 묶음 행사에서 일본 맥주를 제외한 상태다.
이 같은 움직임은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편의점 업종 특성상 브랜드 이미지 훼손이 가맹점의 매출 하락으로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가맹 사업이라 브랜드 이미지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제품 교체나 재고 문제로 비용이 발생하지만 감수해야 한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국산 제품도 저격…0.1%도 'NO'
국내산 제품이라도 예외는 없다. 앞서 CJ제일제당은 즉석밥 햇반에 들어가는 일본산 미강(쌀을 찧을 때 나오는 고운 속겨) 추출물이 일본 후쿠시마산이라는 논란에 휩싸였다. CJ제일제당은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0.1%에 불과한 함량 대비 비난은 거셌다.
식품과 더불어 화장품 업계에도 전운이 감돈다. 일본 브랜드인 SK-II, 시세이도, 슈에무라 등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0% 감소했다.
일본 브랜드가 주춤한 사이 국내 브랜드가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란 기대도 떠오르는 가운데, 때 아닌 원재료 논란도 불거지는 모양새다.
일본산 원재료를 포함한 국내산 제품을 거부하는 소비자들의 움직임이 일면서 업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화장품 업계가 일본에서 수입한 화장품 원료는 1억3500만 달러 규모로, 단일 국가 중 가장 높은 비중인 24%를 기록했다.
이러한 가운데 여름 대표 화장품인 선크림에 일본에서 수입한 고순도 이산화티타늄 분말이 사용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일각에서는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뒤따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원재료를 빠른 시간 내에 대체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일단은 지켜보자는 입장이지만 불매 운동이 장기화되고 있어 국내에서 대체할 수 있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걸리면 죽는다"…'친일' 선긋기 혈안
불매운동 대상으로 지목된 세븐일레븐, 다이소, 쿠팡 등은 잇따른 해명에 나서고 있다. 이들 기업들은 일본계 지분과 투자 등이 얽혀있어 '일본 기업'으로 낙인 찍혔다.
세븐일레븐은 1927년 미국에서 탄생한 브랜드이지만, 지배구조상 일본 기업이 올라 있는 만큼 불매 운동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세븐일레븐은 "당사는 미국 세븐일레븐과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며 일본 기업설을 일축했다.
생활용품기업 다이소도 비슷한 이유로 불매 운동의 표적이 됐다. 국내 법인인 아성에이치엠피가 50.02%, 일본의 대창산업이 34.2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 기업 지분이 30% 이상인 것이다.
이에 대해 아성다이소 관계자는 "지분투자 이외에 일본 다이소에 지급하는 로열티도 없고 경영 참여도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국내 기업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해명했다.
이커머스 업체 쿠팡은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의 투자로 주목 받았으나, 불매 운동 이후엔 이로 인해 된서리를 맞고 있다. 업계에서는 소프트뱅크비전펀드(SVF)가 가진 쿠팡 지분이 30%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쿠팡 측은 자체 뉴스룸을 통해 "외국계 지분율이 높다고 해서 외국계 회사라고 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