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이후 17곳 관련 주총 공시
상장회사의 감사위원들이 임기를 남겨놓고 대거 재선임되거나 중도퇴임하는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 상장사들은 내년 섀도보팅(의결권 대리행사) 제도 폐지를 앞두고 미리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연내 감사 선임 절차를 마무리 지으려는 모양새다.
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달 이후 유가증권시장 상장법인 17곳이 감사 선임 관련 주총 공시를 냈다.
우리들휴브레인과 우리들제약, 삼성중공업 등 3곳은 지난달 임시주총 결과 감사 재선임을 승인했다.
우리은행은 우리금융지주와의 합병을 앞두고 감사위원 2명이 중도퇴임했고 한국금융지주는 지난달 말 임기를 5개월여 남긴 채 감사위원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효성ITX·한국가스공사·롯데하이마트 등 나머지 상장사들은 일제히 감사 선임안을 의결안에 포함하는 임시주총 소집을 예고했다.
이달 들어서도 슈넬생명과학·우리투자증권 등이 관련 임시주총을 다음달 개최한다고 공시했다.
섀도보팅은 회사가 주총을 소집할 때 주주들의 저조한 참석으로 정족수가 미달해 주총이 무산되지 않도록 한국예탁결제원이 의결권을 대리행사해서 총회 안건 의결을 돕는 제도를 말한다.
일반 주주들이 이사·감사 선임이나 배당 등 회사의 경영상 주요 사항을 결정하는 총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아 주총이 무산될 우려를 방지하기 위해 지난 1991년 도입됐다.
따라서 섀도보팅이 없어지면 주총에서 주주들 참여가 차지하는 중요성은 한층 높아진다. 안건이 통과되려면 회사 발행주식 총수의 25% 이상이 출석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섀도보팅 폐지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달 초 전자위임장 권유제도를 입법예고하기도 했다. 소액주주 등 일반 주주들이 주총에 참석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의결권을 스마트폰·PC 등을 통해 행사할 수 있도록 고려한 조치다.
그러나 회사들은 섀도보팅 폐지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주총 절차나 경영상의 차질을 강도높게 우려한다.
한 상장사 관계자는 "(폐지에) 반대한다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실무적으로 곤란해지는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특히 섀도보팅은 사라져도 '3% 룰'은 유지되므로 당장 내년부터 대주주 지분율이 높은 회사는 감사 선임에 걸림돌을 맞닥뜨릴 가능성이 생겼다.
3% 룰은 특별 의결사항인 감사 선임에 대해 대주주가 보유 지분에 상관 없이 3% 넘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제한한 기준이다. 섀도보팅이 사라지면 대주주가 3~4명에 불과한 회사의 경우, 주총 진행에 필요한 정족수에 크게 미치지 못하면서 일반주주 참여율에 더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상장사들은 일단 미봉책으로 올해 안에 감사 선임 등 주총의 주요 사항을 통과시키고 추후 섀도보팅 폐지에 따른 대비를 전개할 작정으로 풀이된다.
우리투자증권만 해도 NH농협증권과의 합병으로 신설 법인이 출범하는 오는 12월 31일에 앞서, 같은달 중순 열리는 주총에서 임기가 남은 감사위원들을 일제히 재선임하는 안을 의결할 예정이다.
그러나 섀도보팅 폐지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당면 과제라는 의견도 팽팽히 맞선다.
금융위가 이를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에 나선 것이 지난해 5월이므로 이미 1년 반에 걸친 유예기간을 거친 셈이다.
다만 대주주 3%룰은 우리나라에만 거의 예외적으로 적용되는 규정으로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게 중론이다.
천창민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3%룰은 섀도보팅과 달리 상법에 따른 것"이라며 "국제적 정합성을 고려할 때 섀도보팅과 함께 이 규정도 적용되지 않는 게 바람직한데 우리나라 기업 지배구조의 특수성 등으로 인해 그렇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외 문제는 전자위임장 제도를 활용하면서 주주의 주총 참여의식을 제고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봤다.
천 연구위원은 "소액주주 역시 주주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아 감사 선임 등에 차질을 빚으면 최악의 경우 상장폐지에 이르는 등 투자회사의 주가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