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해 글로벌 경제의 주된 불안요인으로 작용한 유로존 재정위기가 2013년에도 쉽게 해결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요슈카 피셔 전 독일 외무부 장관은 지적했다.
피셔 전 독일 외무부 장관은 지난 12월 31일(현지시간) 세계 저명인사들의 칼럼을 제공하는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서 "유로존 위기는 근본적으로 통합된 정치시스템의 부재 때문"이라며 미 재정절벽과 국제유가 등 대외정세는 물론, 각국의 자국 이기주의의 대두와 (긴축에 반대하는 올랑드 정권의) 프랑스, 독일·이탈리아 총선 등의 변수도 유로존 위기 극복을 어렵게 하고 있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시장의 관심은 유로존 위기가 올해 끝날지, 아니면 올해 내내 지속되거나 오히려 더 나빠질지에 쏠려 있다.
이는 유럽연합(EU)의 향후 발전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제에도 중요한 현안이다.
EU에 내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더해 올해 EU 전망에는 2가지 대외 정치요인이 중심 역할을 할 전망이다.
먼저 미국의 재정절벽이 첫 번째 요인이다(이 칼럼은 백악관과 미 의회가 31일 재정절벽 막판 합의안을 타결하기 전에 쓰였다). 미국 경제가 이를 막지 못하면 불황에 빠질 위험이 있다. 더불어 유럽은 물론, 세계 경제에도 막대한 충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로 이란의 핵 시설을 둘러싼 미국, 이스라엘과 이란간 대치 상황이다. 미국은 이란이 핵무장할 경우 걸프지역 산유국을 통제권에 둬 국제 유가를 급등하는 결과를 야기할 것이라며 이란과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미국의 불황과 국제 유가 급등의 두 경우 중 하나라도 일어난다면 현 EU의 침체 상황을 심각하게 악화시킬 수 있다. 특히 지금까지 나름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잘 버틴 유럽 북부국가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유럽 남부국가들은 이미 더 나빠질 것이 없는 상황이다.
피셔 전 장관은 유로존 재정위기가 경제·금융 측면의 문제로 보이지만 사실상 문제의 핵심은 정치에 있다고 지적했다. 즉 통화공동체인 유로존을 보다 독립적으로 이끌 정치체제가 부재한 상황인 데다 이를 이끌어나갈 비전과 리더십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
2009년 유로존 위기가 발발한 이래, EU와 유로존은 전례없이 큰 규모의 변화를 겪고 있다.
유로존 회원국들이 위기 해결을 위한 노력에 경주한 결과, 유로존 은행 통합감독기구가 마련된다. 이어 유로존 내 재정을 통합관리하는 총괄 재정기획부도 생길 가능성이 높다. 궁극적으로 유로존의 경제정책을 이끌 수 있도록 중앙집권화된 주권을 가진 진정한 정치연합체도 나타날 수도 있다.
물론 유로존의 최근 이같은 움직임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니다. 이번 위기가 없었다면 유로존 국가의 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이같은 방안을 궁리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올해에도 유로존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체제를 개선해나가는 양상은 지속될 전망이다.
유로존 강국들은 여전히 이번 위기를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있다고 피셔 전 장관은 꼬집었다. EU에 자국 이기주의가 다시 살아나고 유로존 체제의 변화에 대한 염원은 점차 약해지는 상황이다.
가령 독일만 해도 오는 9월 총선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3선에 성공하면 독일이 유로존을 탈퇴할 가능성도 수면 위로 떠오른다. 게다가 독일이 총선을 치르느라 올해 3분기까지는 시간이 어영부영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또 메르켈이 재선된 후에도 유로존 사태 해결에 제자리걸음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사소한 해결책만 수행할 것으로 관측된다.
유럽 남부국가들의 회복세도 관건이다. 경기침체가 지속되면 EU와 유로존의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줄 것이다. 유럽의 부강한 북부국가와 위기에 빠진 남부국가간 차이는 이들의 상반된 이해관계를 더 극명하게 드러내면서 분열 기조를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 유로존과 유로존에 가입하지 않은 EU 국가들과의 괴리도 한층 커질 전망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의 역할은 올해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유로존 내 단일정책을 이끌 유일한 기구인 탓도 있다. 다만 ECB의 이같은 권한은 유로존에 민주적 정치체제가 없다는 점에서 비롯됐으므로 한계가 있다. 이는 올해 문제로 부각될 것이다.
또 독일이 유로존 해결을 위한 새로운 제도적 규제를 만들지 않고 지금과 마찬가지의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유럽 분열을 심화할 우려도 있다.
올 한해는 프랑스의 운명이 결정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프랑스 정부가 극도의 재정개혁과 구조개혁을 감행하지 않는다면 프랑스의 향후 전망은 어둡다. 이는 독-프 공조로 굴러가는 EU의 미래에도 악재다. 두 나라 없이 유로존 위기를 극복할 순 없다.
또다른 불안요소는 EU 탈퇴 가능성을 밝힌 영국과 2월 이탈리아 총선, 유럽에 다시 등장한 강력한 국수주의 등이다. 다만 연이은 선거 결과가 유럽에 별다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진 않는다. 유럽 각국의 야당이 여당보다 마땅히 제시할 만한 묘책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 종합해 볼 때 올해 유럽이 그간의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길 바라긴 하지만 그러기 힘들어 보인다고 피셔 전 장관은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