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오랜 군부통치에서 벗어난 미얀마가 새로운 신흥 고성장국으로 떠오를지에 외국인 투자자의 관심이 쏠려있다. 헬스케어와 부동산을 중심으로 월가 자금이 빠르게 유입되고 있다.
인권과 정치적 이유로 미얀마에 대한 국제적 경제제재를 주도해 온 미국이 올 들어 다섯 차례에 걸쳐 제재를 완화하면서 무기수출 등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투자 빗장이 열리기 시작했다.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가 올 4월 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는 등 미얀마가 지난 50여년 간의 군부 통치를 끝냈다는 기대감이 작용한 결과다. 수치 여사는 오는 2015년 미얀마 대선에도 출마할 뜻을 밝혔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여전히 기대 반, 우려 반의 시각이 공존한다. 미얀마의 잠재력에 주목하면서도 반짝 버블 후 고전 중인 제2의 베트남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월가, 미얀마 헬스케어·부동산에 눈독
2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월가의 사모투자전문회사(PEF)들 일부는 미얀마 투자를 급속히 늘리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헬스케어와 부동산 등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실크로드 파이낸스는 최근 개인투자자를 대상으로 2500만달러를 조성하고 미얀마 수도인 양곤에 사무실을 차렸다. 런던과 홍콩에 근거지를 두고 13억달러 자금을 운용하는 큐브캐피탈은 최근 시가 2000만달러가 넘는 미얀마 부동산에 투자했다. 특히 큐브캐피탈은 신흥 아시아 시장에 대한 투자자금으로 2억달러 규모를 조성해 이중 4분의 1가량을 미얀마에 집중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월가의 대표적 비관론자인 마크 파버가 속한 레오파드캐피탈 역시 1억5000만달러 규모로 미얀마에 주로 투자하는 펀드 2개를 만들 예정이다. 홍콩과 미얀마에 근거지를 둔 바간캐피탈은 미얀마에 투자할 7500만달러 자금을 모집하고 있다.
다국적기업인 제너럴일렉트릭(GE)과 펩시코 역시 미얀마에서 투자할 곳을 물색 중이다.
하지만 낙관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 미얀마의 인프라가 외국계 대규모 투자나 자본거래를 받아들일 만큼 구축되지 않은 점이 우려 요소다. 월가 대형 PEF인 KKR과 블랙스톤그룹 등은 이러한 이유로 미얀마 투자에서 여전히 한발 물러서 있다.
◆인프라 부족에 버블 우려 상존
일부 월가의 움직임에도 불구, 대부분의 외국 기업들은 아직까지 미얀마를 수출시장 정도로만 여기고 있다.
인프라 여건이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지역은행들은 주요 외국계 기업들의 현지 설비 투자를 지원할 대출시스템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회사채 시장도 아직 조성되지 않았고 증권거래소는 향후 일본의 주도 아래 설립될 전망이다. 일본 정부가 올 4월 미얀마 부채 탕감을 조건으로 미얀마 중앙은행과 현지 증권거래소 설립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WSJ는 이같은 미얀마의 열악한 인프라로 인해 외국계 투자금이 일단 들어와도 나중에 회수하기 어려운 유동성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갑작스러운 투자로 인한 버블 가능성도 문제로 제기된다.
WSJ는 미얀마의 부동산 가격이 이미 합리적인 수준을 넘어섰다며 거품 현상을 우려했다.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에 근거지를 둔 부동산 전문 이샨캐피탈파트너스의 존 반 오오스트는 "미얀마에 투자한 모든 프로젝트는 다 실패로 끝날 것"이라며 "미얀마 땅값이 이미 과도한 인플레 국면에 접어들었고 현지 사업자들을 믿을 수 있는지도 확실치 않다"고 우려했다.
KKR의 밍루 동남아시아지역 대표는 "많은 투자자들이 미얀마로 몰려들고 있지만 아직 현지 시장은 준비가 안 된 상태라고 본다"고 전했다.
미얀마 투자의 회의론자들은 1990년대 초 베트남을 선례로 언급했다. 당시 베트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재빨리 진출했던 투자가들이 기대만큼 수익을 거두지 못한 뼈아픈 기억을 회자했다.
미얀마의 정치경제적 리스크가 여전히 큰 점도 불안 요인이다. 미얀마 역시 1990년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민주화 세력이 압승하면서 개방 기대감이 일었지만 이내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 권력을 잡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급속한 제재 완화 "중국 견제 목적"
그럼에도 미국이 2011년 미얀마 신정부 출범 이후 불과 1여년 만에 미얀마에 대한 경제제재를 대거 해제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이같은 조치가 아시아 지역에서 급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풀이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는 29일 보고서에서 "이달 19일 오바마 미 대통령이 미얀마를 방문하고 내년 미국이 방콕 근해에서 시행 예정인 군사훈련에 미얀마 군대를 옵저버 자격으로 초청한 것도 아시아에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지정학적 상황 때문"이라며 "2015년 미얀마 총선거에서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야당으로 정권이 교체되고, 수치가 대통령에 취임한다면 미얀마 제재는 완전히 해제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같이 밝혔다.
오윤아 KIEP 연구원은 제재 해제로 인한 시장 여파에 대해서는 "특히 미얀마산 제품 수입금지가 해제될 경우, 현지의 봉제와 섬유제품, 수산물 수출이 본격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며 미얀마에 수출기지를 세우고자 하는 외국기업들의 관심을 불러모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은 2011년 이후 올해 11월 19일까지 미얀마에 대한 투자금지, 금융거래 금지, 원조금지, 미얀마산 상품 수입금지를 완화했다. 이로써 일반특혜관세(GSP)와 무기수출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금지 조치가 완화됐다.